• 조선일보 26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양상훈 논설위원이 쓴 '하늘은 당선자에세 100일을 준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1981년 1월 20일 미국 레이건 대통령 취임식 날 정오 워싱턴 백악관 문 앞에는 이삿짐을 실은 대형 트럭들이 예정대로 줄지어 도착했다. 그와 동시에 백악관 각 사무실에 새 대통령 사진이 걸리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 7시30분 새 정부의 집무는 한치의 오차 없이 출발했다. 이 이사를 취재한 미국 공영방송은 나중에 그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했다. 미국 대통령학 전문가 데이비드 거겐이 말한 대로 “밥 먹던 숟가락을 떨어뜨릴 만큼 딱 부러졌던” 이 이사는 레이건 팀의 철저한 정권 인수 준비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었다.

    1976년 미국 대선에서 카터가 당선된 뒤 참모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모이긴 모였는데 누가 회의를 주재할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우왕좌왕하던 중에 갑자기 누가 나서서 “내가 제일 나이가 많으니 지금부터 회의를 주재하겠다”고 했다. 카터 정권의 실패는 여기서 시작됐을지도 모른다.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 날부터 취임식까지 한국이든 미국이든 두 달이 좀 넘는다. 취임 후 한 달 정도를 포함해 100일은 하늘이 당선자에게 내려준 시간이다. 이 기간 중에는 야당의 대통령 공격이 줄고 언론의 본격적 비판도 시작되기 전이다. 이 황금 같은 기간을 잘 활용하면 레이건처럼 역사를 바꿀 수도 있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에 도취돼 케네디의 쿠바 침공이나 카터의 신에너지 계획과 같은 대실수가 나올 수도 있는 게 이 100일이다.

    선거는 승리의 고지를 향한 맹목적 돌격이다. 그 고지 너머에 뭐가 있는지 관심 밖이다. 고지 너머엔 천길 낭떠러지가 있다. 당선 뒤 1년간 선거 때처럼 마구 내달리다 수직 하락했던 클린턴이 산 증인이다. 정권 인수는 당선 다음 날 아침 당선자가 누구에게 전화를 하고 누구와 점심 먹을지부터 준비하는 것이다. 레이건은 이미 선거 기간 중에 심복인 에드윈 미즈를 인수위원장으로 지목했다.

    미즈는 3~4명만을 데리고 경제 회생과 안보 재건을 위한 정책의 우선 순위를 선거 전에 결정했다. 당선되자 곧바로 행정부 사람들을 불러 “신임 장관이 처음 부딪힐 현안이 뭐냐”고 물었다. 새 장관들은 정책 우선 순위와 부처별 현안이 정리된 브리핑북 한 권씩을 받아 들었다. 장관들은 새 정권이 어디로 가는지 자신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사무실에 들어섰다. 심지어 레이건은 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기도 전에 워싱턴의 유명한 헤드 헌터에게 다음 정권 각료 인선 자료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대상자에 대한 배경 조사도 상당 부분 이뤄졌다. 그 자료가 없었다면 당선 후 곧바로 당선자와 실세 5명이 각료 인선 작업에 들어갈 수 없었을 것이다.

    카터도 레이건 못지않게 일찍 정권 인수 준비를 시작한 사람이지만, 레이건과는 큰 차이가 하나 있었다. 카터는 필요 없다고 한동안 비서실장을 두지 않았다. 레이건은 일찌감치 제임스 베이커를 비서실장으로 내정하고 백악관 참모진과 각료 인선 작업을 맡겼다. 말 많고 탈 많은 인선 작업에 질서가 잡혔다. 대통령이 모든 것을 할 수는 없고 해서도 안 된다. 비서실장은 대통령 대신 일하고 협상하고 싸우다가 책임까지 지는 사람이다. 그냥 ‘실세(實勢)’가 아니다. 어쩌면 대통령의 성패는 첫 비서실장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미국은 당선자의 정권 인수가 마흔 두 번 있었던 나라다. 그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을 찾다 보면 결국 첫 100일의 활용, 각료 인선과 정책의 사전 준비, 첫 비서실장 인선으로 압축되는 것 같다. 지금 이명박 당선자의 정권 인수 작업은 역대 정권들과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인선의 사전 준비는 없었던 듯하고, 정책도 큰 방향은 있으나 구체적 우선 순위는 지금부터 논의하는 단계다. 이 당선자는 ‘실세’를 싫어한다고 한다. 그래선지 인수위원장은 나오는데 비서실장 얘기는 없다. 앞으로 베이커 같은 비서실장이 나올지도 불확실하다. 오늘로 우리 역사를 바꿀 수도 있는 100일, 하늘이 당선자에게 내린 100일 중 7일이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