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25일자 오피니언면 '시시각각'에 이 신문 이훈범 논설위원이 쓴 '반성문'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국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흠 많고 탈 많은 제게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크고 어렵고 귀한 임무를 맡겨 주신 데 그저 감사하고 또한 송구할 따름입니다. 저의 허물과 과오에 비추어, 국민 여러분께서 보내주신 성원은 정말 분에 넘치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작고 밭은 그릇으로는 제게 주어진 지지표의 절반의 절반도 담아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저의 당선이 곧 제가 잘나서가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저에게 던져진 48.7%의 지지표가 꼭 저를 지지해서가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거듭되는 추문 속에서도 국민 여러분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은 것이 꼭 저를 사랑하고 저를 믿어서가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보다는 현 정권에 대한 깊은 실망감에 부딪혀 나온 반사이익을 얻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느끼고 있습니다. 투표소에 가지 않은 37% 유권자들의 마음을 느낍니다. 저를 찍지 않은 51.3%의 표심을 느낍니다. 붓두껍을 들고 마지막 순간까지 망설였을 많은 유권자의 불안을 느낍니다. 저의 뒷모습에서 오만과 독선의 그림자를 보고 계시는 국민의 시선을 느낍니다. ‘이명박이가 잘할 수 있을까’, 바라보는 국민의 근심어린 표정을 가슴 깊이 느끼고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 사죄의 말씀 올립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과거의 저는 국민 여러분께서 보셨던 대로 한없이 부족하고 턱없이 모자란 사람이었습니다. 어리석었습니다. 그래서 못난 짓들을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좀 더 나은 교육을 시키겠다고 위장전입을 했습니다. 돈을 좀 더 벌어보겠다고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과 손을 잡고 사업을 했습니다. 사업을 일으키겠다고 제가 주인이라 위장 홍보도 했습니다. 진짜 주인이 되려고 마음먹은 적도 있었습니다. 잘못을 알고 손을 떼긴 했지만 부끄러운 얼룩을 숨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거짓말도 했습니다. 또한 번 돈을 아껴보겠다고 자식들을 위장취업도 시켰습니다.

    이런 허물 중 하나만 가져도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어울릴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기쁨보다 부끄러움이 앞섭니다.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BBK보다 자녀 위장취업 같은 추저분한 일이 국민을 더욱 분노케 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BBK 역시 잘못이 없다는 사법적 판단을 받았지만 그것으로 도덕적 잘못까지 씻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용서를 바라지 않겠습니다. 덕은 없고 흉만 많은 저를 대통령에 뽑아주신 국민의 참뜻을 저는 국민께 진 빚이라 여기겠습니다. 그래서 임기 동안 한 점 다른 마음 없이 뼈가 가루가 되고 몸이 바스라지도록 일을 해 그 빚을 갚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5년 뒤 용서를 구하겠습니다. 그때 제가 모자람 없이 일을 했다고 생각하신다면 저의 과거 잘못을 용서해주십시오. 그렇지 못하다면 10년 전, 20년 전 일이라도 가차없이 심판의 채찍을 내리치십시오. 무릎 꿇고 달게 받겠습니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뒤집을 수도 있다(水則載舟 水則覆舟)”는 순자(荀子)의 경고를 임기 동안 가슴에 새기고 살겠습니다. 12월 19일은 제 생일입니다. 대선 투표일이던 2007년 12월 19일 저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새롭게 거듭난 이명박이 가는 길을 지켜봐 주십시오.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이 약속을 국민 여러분께 성탄 선물로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07년 12월 25일 대통령 당선자 이명박
     
    이명박 당선자는 국민을 섬기겠다고 했다. 국민에 희망을 주겠다고 했다. 그 말을 믿고 싶은데 뭔가 부족한 게 있다. 국민에 대한 사과다. 특검을 앞두고 있지만 도덕적 책임에 대해서는 한마디 했어야 했다. 그것이 차기 대통령으로서 더욱 큰 믿음을 주는 행동이었다. 사과를 빠뜨린 그를 위해 대신 반성문을 써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