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11일자 오피니언면에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쓴 '선택, 일주일 전'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어수선한 날들이었다.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갈 지도자를 뽑는 데에 반드시 이런 혼란스러운 통로를 거쳐야 하는지 회의가 드는 날도 많았다. 정치 노선을 여러 번 바꾼 사람, 공인 의식이 부족한 사람, 국가와 기업을 혼동하는 사람, 간판만 바꾼 사람, 설욕하고 싶은 사람이 대선 정국에 뛰어들어 정신을 뒤흔들 때마다 여전히 ‘후진 정치’에서 헤매는 현실 한탄이 절로 나왔다. 늘 그래 왔듯, 이번에도 대권을 향한 신생 정당이 급조됐고, 보태 주기와 네거티브가 판을 쳤다. 선진국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정당들의 일시적 이합집산과 정치인들의 재바른 변신 능력을 유권자는 물론 정치학자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국민소득 2만 달러, 민주주의 세계 30위권 국가에서 일어난 지난 일 년간의 정치적 파노라마는, 그러나, 이제 겨우 선거 일주일을 앞두고 본궤도에 진입했다. 그러자 결심해야 할 순간이 코앞에 닥쳤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필자는 21세기 대한민국이 추구해야 할 그 ‘시대정신’ 또는 핵심 가치들이 무엇인지 헷갈린다. 여러 후보가 공통으로 외치는 경제도 중요하고, 사회정의·민생·교육·복지·외교·남북평화와 공동번영도 놓칠 수 없는 목표들인 것만은 틀림없다. 6명으로 압축된 주요 주자들은 이런 성분들로 버무린 신생 상품을 들고 나와 바겐세일을 외치고 있다. 투표라는 유권자 구미를 당기는 정치 상품을 만들어 헐값에 대량 판매하는 거래다.

    상품들은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성분 배합 비율은 매우 다르다. 5년 전 유권자들은 ‘사회정의’ 함량이 많은 상품을 구매했는데, 품질은 별로 신통치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구매자의 취향이 ‘경제’ 쪽으로 대거 이동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렇다고 해서 유력 후보가 유권자의 경제 심리를 충족시키리라는 보장은 없다. 민주주의는 불확실성의 선택이란 걸 몇 번의 기대와 실망 끝에 이미 터득했다.

    독일 용어인 시대정신(Zeitgeist)은 탁월한 정치인이 역사의 물꼬를 터 나간다는 엘리트적 개념이 아니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생활인들이 두루 원하는 소망의 총체 또는 집단심을 지칭하고, 그것을 어떤 상징적 정치인에게 투영하여 실현토록 하는 것, 그것이 시대정신이다. 사회국가(Sozialstaat)를 자칭해 온 독일은 2005년 저성장의 늪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쌍둥이 건물에 덮개를 씌워 만든 독일경제인연합회 건물 공간에 독수리가 날았다. 독수리는 기업의 상징, 닫힌 공간은 세금 족쇄를 의미했다. 복지 급여를 월급처럼 받고 사는 직업 실업자의 도덕적 해이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부지런한 독일 국민이 경종을 울렸다. 메르켈은 그런 집단심을 간파해 기민당 당사에 현수막을 걸었다. “500만 실업 시대-슈뢰더 총리, 지구를 떠나시오”라고. ‘500만 실업’은 나치를 탄생시킨 악몽의 숫자였다. 그해 가을, 여장부 메르켈은 거뜬히 슈뢰더를 떠나보냈다. 이게 당시 ‘독일’의 시대정신이었다.

    한국은 복지 독일이 아니고, 더욱이 ‘경제’가 우리 시대정신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유권자들은 그보다 더 근원적인 것, 한국 사회가 길러 온 잠재력을 위축시킨 외골수 이념 정치, 열등감과 상처를 헤집어 놓는 자학증 또는 마조히즘적 세계관을 벗겨낼 것을 원한다.

    유권자들은 권력 집단이 퍼부었던 계몽과 비난에 넌더리가 난 것이다. 그런 까닭에 후보들이 내놓는 어떤 정책 메뉴도 곧이들리지 않는다. 반부패를 외쳐도 반향이 없고 운하가 걱정돼도 나중 일이다. 거칠고 속된 말의 난무에 시달렸던 지난 5년을 위로받고 싶은 심정, 세계의 흐름에 역류하지 않을 정도의 상식적 통치, 노력과 성적으로 예측 가능한 입시, 그리고 경제 숨통을 틔워 실직과 가계 빚 걱정에서 벗어나는 것, 이 소박하기 짝이 없는 꿈이 시대정신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 시대정신이라고 해서 거창한 게 아니다.

    ‘호통 치는 통치자’가 아니라 ‘격려하는 통치자’면 족하다. ‘듣고 책임지는’ 통치자면 더 좋다. 국민이 원하지 않으면 공약도 폐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의 주변에 경륜·지혜·융통성을 겸비한 인물이 많을수록 우리에겐 행운이고, 험난한 세계 경쟁에서 항해 감각을 익혔다면 금상첨화다. 며칠 전 ‘제대 말년’을 신고한 노무현 대통령도 5년 전에는 그랬듯 후보 모두 자신이 적격임을 웅변하고 있다. 누구인가? 선택 일주일 전, 우리는 그가 보고 싶다. 그가 없다면 그 상징이라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