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1일자 오피니언면에 언론인 류근일씨가 쓴 '이회창씨의 경우'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이회창 후보는 도중하차의 뜻이 없는 것 같다. BBK 이후 그의 지지도가 2등과 3등 사이를 왔다 갔다 했는데도 그의 한 측근은 “대의를 위해 사퇴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그런 말 꺼냈다가는 맞아 죽기 딱 좋은 분위기”라고 답했다. 그가 자신이 승리하지도 못하면서 우파만 분열시켜 결국 ‘좌파 종식’이 좌절될 경우, 한말(韓末) 정치인 김홍집처럼 종로 네거리에서 군중들한테 당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도 그는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가 없다”는 대답이었다. 이런 분위기가 사실이라면 이회창씨는 누가 뭐라 하든 끝까지 간다고 볼 수밖에 없다.

    지금의 추세와 여론조사대로라면 이회창씨가 끝까지 뛴다고 해도 대선(大選) 판세에는 별다른 큰 변동은 없을 수도 있다. 이것은 물론 투표 당일까지도 확언할 수 없는 문제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런 가정을 일단 세워놓고 따져 볼 때, 이회창씨는 자신이 왜 그렇게까지 굳이 출마를 고집해야 했는지, 왜 끝까지 완주해야 했는지, 그리고 왜 지지세력을 묶어 정당(政黨)화하려 하는지에 대해 명분 설정이 있어야 한다. 즉 자신의 역할에 대한 정의(定義)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단순히 “이명박씨의 정직성을 신뢰할 수 없어서…”라는 이유는 이제 먹히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2등 아닌 3등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회창 후보가 포기할 수 없는 명분을 찾는다면 그것은 한마디로 범(汎)우파 진영의 ‘마지노선(線) 역할’을 하는 것이다. 민노당 권영길 후보는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이 너무 ‘중도화’하거나 ‘우(右)로 한 클릭’ 이동하지 못하도록 견제하고 견인하는 역할을 하는 데서 자신의 고유한 존재 이유를 확보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이회창 후보도 촛불이나 들고 ‘좌파와 함께 춤을’ ‘검찰수사에 국민적 저항을’ 하는 격에 맞지 않는 일을 하기보다는, 이명박 진영과 한나라당이 너무 ‘중도화’하거나 ‘좌(左)로 한 클릭’ 하지 못하도록 견제하고 견인하는 역할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보수, 우파 정권’이 들어선다고 가정할 때, 거기서 누가 집권세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은 비록 12월 19일까지는 후보들로서는 ‘부정 탈 소리’겠지만 국민으로서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그 중요한 역할을 지난 10년 동안 이 나라를 괴롭혀 왔던 친북 좌파에게 맡겨도 좋을 것인가? 그들이 주요 야당 자리를 차지해 깽판을 칠 경우, 한나라당 ‘웰빙족(族)’들이 1905년 이후에 볼셰비키들의 행패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던 러시아 케렌스키 정권의 우유부단을 되풀이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실제로 없다.

    이회창 후보가 향후 정계에서 할 역할이 있다면, 바로 이런 가능성에 대비해 집권당이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 문제에 있어 친북세력의 눈치를 보며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는 줏대 없는 처신을 하지 못하도록 ‘우파의 빗장’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회창 출마로 이명박 참모들의 입에서 당장은 “우(右)도 아니고 좌(左)도 아니다”란 소리가 자제되고 있는 것이 그 좋은 본보기라 할 수 있다.

    12월 19일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친북 좌파는 국회와 민간부문의 많은 전략요충을 장악한 지 오래다. 그래서 대한민국 진영의 실지(失地)회복 투쟁은 대선 이후에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이회창씨가 대선 완주의 명분을 붙잡으려면 그는 대선 이후에 전(全) 사회적으로 파급될 그런 반좌파 탈권 투쟁의 ‘안시성(安市城)’ 역할을 자임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전략에 선다면 그는 같은 우파 세력을 상대로 전면전을 벌여서는 안 된다. 한나라당에는 “정신 차렷!” 하는 견제구(牽制球)를 던지는 정도로 한정하면서 전면전은 역시 친북 좌파에게만 집중해야 옳을 것이다. 제2의 지역정당으로 전락해 정치 지분이나 챙기겠다는 것이라면 그것은 더더욱 ‘역사의 분노’를 면치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