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사퇴에 대국민담화까지, 국회-靑 물러설 수 없는 치킨 게임 돌입
  • 새 정부 정부조직법 개편안을 둘러싼 국회와 청와대의 힘겨루기가 점입가경이다.

    임기 초 소위 ‘기를 잡겠다’는 청와대와 ‘초반에 잡히면 끝이다’며 반발하는 야권의 의례적인 공방인가 했더니, 주변 정국과 맞물려가면서 점차 심각한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4일 오전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의 돌연 사퇴 선언과 박근혜 대통령이 강경 발언 일색이었던 대국민담화문을 통해 ‘배수의 진’을 친 것이 결정적이었다.

    총선-대선 패배 이후 회생을 위해 안간힘을 쓰던 야권이 정국을 이제는 물러설 수 없는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는 분석이다.

    박 대통령의 담화 이후 청와대 안팎에서는 ‘누구 하나는 죽어야 하는 치킨 게임’이 벌어진 것이 아니냐는 얘기까지 돌기 시작했다.

    더불어 정치권에서는 반대를 위한 반대에 너무 열을 올리는 야권과 이에 지지않으려고 밀어붙이려는 청와대, 그리고 둘 사이에서 이렇다 할 중재를 하지 못하고 어리버리하게 관망만 하는 여권까지 ‘삼박자’가 맞아 떨어지면서 사상 유례없는 국정 운영 차질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 뉴데일리
    ▲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 뉴데일리

     

    ◆ 정부조직법 개편 강행…너무 밀어붙였나?


    정부조직법 개편을 둘러싼 국회와 청와대의 힘겨루기는 그동안 여론전 양상을 보여 왔다.

    국정 운영 파행의 원인이 ‘야당의 발목잡기냐’, ‘박 대통령의 밀어붙이기냐’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누가 더 많은 여론을 등에 업느냐의 싸움이었다.

    청와대도 이를 감안해 최대한 낮은 자세로 접근하는 방식을 택해왔다.

    여야 대표단의 청와대 회동을 제안한다거나, ‘호소’ 혹은 ‘읍소’의 형식으로 국회의 협력을 요청하고 동정 여론을 형성하는데 신경 쓰는 모습을 보여왔다.

    실제로 임기 초반 지지율 50%대를 보이며 반쪽 정부 우려까지 낳았던 박근혜 정부가 이번 사태에 관련해 온라인상에서도 비등한 여론 분포를 보일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날 박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문 어조는 예상 밖의 수위를 보여줬다.


    “정부 출범 일주일이 되도록 법안이 국회통과를 못해 헌정사상 초유의 국정운영 차질이 발생한다.”

    “(김종훈 내정자가)우리 정치의 현실에 좌절을 느끼고 사의를 표해 정말 안타깝다.”

    “(야당이)본질에서 벗어난 정치적 논쟁으로 문제를 묶어 놓고 있다.”

    “그 피해는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것이다.”
        - 朴 대통령


    청와대는 야당의 요구를 충분히 수용하고 많은 양보를 했음에도 끝도 없는 정치 공격으로 김종훈 내정자가 사퇴를 했고, 국민의 피해로 이어지는 이 사태의 책임이 야당에게 전적으로 있다는 주장을 거듭 반복했다.

    박 대통령의 이 같은 고강도 압박이 민주당에게는 ‘여기서 물러서면 끝이다’는 심리를 가지게 하는 원인이 됐다는 말이다.

    특히 핵심 쟁점인 미래창조과학부의 업무에 대해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부분만 남겨놓은 상황이다. 이것이 빠진 미래창조과학부는 껍데기만 남는 것이고 굳이 미래창조과학부를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말은 결정적이었다.

    만약 민주당이 향후 정부조직법 개편안을 수용한다고 해도 대승적 타협이 아닌 박 대통령의 카리스마와 추진력 때문이라는 평가로 꾸며질 공산이 높아졌다는 점에서 더더욱 타협을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든 셈이다.


  •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이 4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미래창조과학부 김종훈 장관 내정자의 내정자직 사퇴와 관련, 청와대의 유감과 우려 입장을 밝힌 뒤 굳은 표정으로 연단에서 내려오고 있다. ⓒ 연합뉴스
    ▲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이 4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미래창조과학부 김종훈 장관 내정자의 내정자직 사퇴와 관련, 청와대의 유감과 우려 입장을 밝힌 뒤 굳은 표정으로 연단에서 내려오고 있다. ⓒ 연합뉴스


    ◆ 민주당은 ‘그래 해보자’...새누리는 여전히 ‘어리바리’

    배수의 진을 친 박 대통령의 대국민담화 이후 민주당의 반발은 당연히 더욱 거세졌다.

    안철수 교수의 등장으로 ‘미니 총선’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을 정도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4월 재보선을 코앞에 두고, 새 정부와의 기싸움에서 더는 밀릴 수 없다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

    문희상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박 대통령의 담화를 “오만과 불통의 일방통행”이라고 규정했다.

    또 “정부조직 개편은 대통령의 촉구담화, 대야당 압박 일방주의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라며 청와대가 원안고수에서 한발짝 양보할 것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마치 그동안의 유연했던 청와대 반응에서 강경 반응으로 변한 것이 오히려 더 상대하기 편해졌다는 표정이다.

    논란이 커질수록 야권의 목소리는 더욱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다, 안 전 교수의 보궐선거 출마를 계기로 정치권에 또 한번 ‘정권 심판론’이 불거질 공산이 커졌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협상은 없다’며 전면 보이콧을 주장하는 강경파까지 나온다.

    “저 쪽(청와대)에서 이렇게 나온 이상 우리도 더 물러설 수 없는 입장이 됐다.
    양보가 없는 타협을 이어가게 되면 우리도 할 수 있는게 없다.
    결국 국정운영 차질의 책임은 대통령이 질 수밖에 없다.”
         - 민주당 고위 관계자

     

    중재에 나서야 할 새누리당은 뭔가 겸연쩍은 모습이다.
    박 대통령의 강경 드라이브가 못마땅하다는 기색도 여기저기서 묻어난다.

    실제로 새누리당은 이날 대국민담화에 대해 이렇다 할 논평조차 내지 않았다.
    오히려 김종훈 내정자의 사퇴를 두고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는 등 손발이 맞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김 내정자가 ‘조국을 위한 뜻을 접겠다’고 한 말을 재고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어려움이 많은 땅이지만, 국민·정치권과 함께 이를 극복하는데 의미가 있다. 어려울 때 뒤로 물러서는 것은 올바른 게 아니다.”
        - 황우여 대표


  •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가 4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후 정론관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가 4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후 정론관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 달라진 朴 대통령 눈빛…왜 그랬나?

    사실 박 대통령의 유례없는 고강도 담화문과 강행 드라이브 움직임은 임기 초반부터 감지됐던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날처럼 실제로 사태가 벌어진 것에는 ‘더 이상 여야 합의만 지켜볼 수 없다’는 박 대통령의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종훈 내정자의 돌연 사퇴가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국민담화 일정이 발표된 것은 3일 오후 4시30분.
    김 내정자가 이날 사퇴 의견을 박 대통령에게 전달한 직후, 일정이 잡힌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박 대통령은 김 내정자에게 사퇴 의사를 반려할 것을 간곡히 요청했지만, 그 뜻을 꺾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스스로 삼고초려 끝에 등용한 김 내정자가 사퇴까지 결정하는 과정을 보고 박 대통령 특유의 ‘불쾌함’이 그대로 담화에 담긴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덕분에 청와대는 하루종일 찬물을 끼얹은 분위기다.
    고위 관계자들은 극도로 입조심을 하기 시작했고, 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국회를 향한 모든 채널을 가동해 정부조직법 통과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주 불투명해졌다.
    이제 우리 손을 떠났다는 말도 들리며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는 위기감도 감돌고 있다.”

     이날 <뉴데일리>와 만난 청와대 관계자가 전한 내부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