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과 부국>-대한민국 질풍노도의 역사 이야기

지우려해도 지울 수 없는 '역사의 아버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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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질풍노도 시기 다룬 고전 반열의 책

 - <건국과 부국>김일영 著

고진석 /독서 컨설턴트

“아들에 의한 아버지 지우기와 찾기 작업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운명. 이것이고대의 오이디푸스 왕 신화부터 최근의 <시인>까지 수천 년 이어지는 수 천년 인류 역사의 지적 축적이 주는 교훈”이 책에서 나오는 시인은 소설가 이문열의 소설 주인공 시인 김삿갓을 말한다. 이 책 <건국과 부국>(기파랑 펴냄) 의 저자인 고(故)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는 "역사는 앞선 세대의 삶의 발자취이며 '아버지'를 부정하고 지우려고만 해서는 발전이 없다"고 독자들에게 충고한다.

“역사란 좀 더 살갑게 정의하자면 앞선 세대의 삶의 발자취이며, 현대사는 부모나 조부모의 삶의 궤적이라 할 수 있다. (중략) 즉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자식(후속 세대)이 부모(앞선 세대)를 어떻게 보고 받아들이는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건국과 부국>이 개정본으로 선보인 게 2010년인데, 빠른 속도로 이 분야 저술의 핵심이자 대중적 저작으로 높이 평가 받고 있다. 문장 역시 흔치 않게 매끄럽고, 균형 잡힌 시각 역시 돋보이는 이 책은 건국과 부국을 이룬 아버지들을 다룬다. 고인에 의해 이 책에 쓰인 2005년은 박정희에 대한 부정적인 역사적 평가 작업이 이루어진 때였음을 감안한다면, 더욱 경이롭다. 즉 건국의 아버지들의 역사를 부정하는 시기에 이 책은 쓰여 졌다. 이 책의 무대는 1945년 해방부터 1972년 유신체제가 성립할 때까지의 30여 년이다.

철지난 지 오래인 수정주의 시각의 '대청소'


이 시기는 국가건설과 산업화, 즉 건국과 부국의 시기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수정주의적인 시각을 단호히 거부한다. 우선 분단을 미제국주의자들의 음모(?)라는 수정주의적인 시각을 거부하고 분단을 냉전의 세계사적 전개라는 차원에서 접근하면서 농지개혁과 한국전쟁을 국가형성 및 국민형성의 관점에서 분석하면서 1945년부터 1960년대 이후의 발전을 국민국가 형성의 시기로 바라본다. 사실 이승만 박정희를 부정적으로 보는 역사관의 시작은 수정주의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수정주의 역사학자 브루스커밍스는 그의 책 <한국전쟁의 기원>에서‘6•25전쟁 이전 남한에선 농지개혁이 이뤄지지 않았고 이승만은 지주계급의 압력 때문에 농지개혁에 미온적이었다’고 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농민을 자신의 지지기반으로 끌어들이려 했던 이승만은 농지문제 해결이 급선무라는 것을 알고 농지개혁을 서둘렀다. 1950년 3∼5월 적어도 전체 농지의 70∼80%에 대한 분배가 단행됐다. 전쟁 발발 후 남한을 점령한 북한군이토지 재분배를 했지만 이미 농지를 분배받아 소농(小農)화된 대다수 농민들은 큰 호응을 보이지 않았다.”

수정주의의 대표주자 커밍스는 1905년 을사늑약 이후 1945년까지의 일제강점기를 6•25전쟁의 주요 원인으로 본다. 일제강점기 한국의 지주, 양반계급들은 식민지 국가와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산업자본가로의 전환이 미약했고 이에 반발하는 소작농이 지주, 양반 계급과 갈등하고 대립이 결국 한국전쟁의 기원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계급적 대립은 오늘날 까지도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남한의 근대화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을 제공하는 논리적인 기원이 되었다.

커밍스의 중요한 오류 중의 하나는 그가 생각한 것처럼 한국 내 지주세력들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제는 농업정책을 포기하고 식민지 내 일본인들이 주가 된 산업화 정책을 시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남한의 건국은 잘못된 것이라면 오늘의 대한민국의 건국은 정통성을 상실한 행위일 것이며 그 결과로 남한은 미국의 식민지 정도에 지나지 않는 나라가 되는 역사해석의 오류를 범하게 된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남한의 역사를 무능하게 보는 오류를 지닌 것이 수정주의 사관이다. 저자는 수정주의의 오류를 극복하려는 정직한 지식인 중에 한명이었고 이 책은 그의 충정에서 비롯된 저작이다.

지우려 했던 '역사적 아버지' 박정희의 재등장


2012년 대선에서 박정희의 딸이 당선 되면서 박정희는 현실 정치에 다시 등장한다. 박정희 시대를 온몸으로 살았던 이 시대 50대는 젊어서 지우려했던 역사적 아버지를 찾아 복권시켰다. 한국의 현대사는 마치 김삿갓이 자신의 아버지를 지우고 찾고를 반복하는 운명과 비슷하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련이 붕괴되면서 체제 경쟁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선택한 진영의 승리로 끝났다. 체제 비교는 현실로 나타난 결과가 실험을 대신해줄 수밖에 없다. 우리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이승만의 단정 노선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제목은 <건국과 부국>이다. ‘건국’ 나라를 세운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건국은 썩어빠진 조선왕조의 계승이나 상징적 의미를 가진 임시정부의 계승을 말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새로운 국가 탄생을 의미한다. 단독 정부론이 최선이 아닌 전략적 차선이었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역사적 결과를 놓고 본다면 매우 현명한 선택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런 사고의 이면에는 통일 정부를 수립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민족주의적 회한이 깔려 있다. 그러나 체제를 불문하는 통일지상주의나 사회주의적 통일을 아쉬워하는 사고에는 단호한 평가를 내려야 한다. 당시 냉전의 세계사적 전개 속에서 이승만의 단정(單政) 노선은 냉전의 양대 세력 중 미국에 편승해 먼저 정부를 세우고, 이를 토대로 북한을 통일하자는 2단계 전략의 일환이었다.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로 냉전이 끝난 현 시점에서 볼 때 단정은 최선은 아니지만 가능한 범위 내에서 차선의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본적인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정체성이 모호한 통합노선 보다는 명확한 정체성을 가지고 서방의 동맹국이 되는 단정노선이 옳았다는 것이다. 해석의 다양성이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이 주장은 타당하다는 것이 오늘의 대한민국의 현대사가 말해 주고 있다.

부국을 이룬 지도자 박정희! 한국근현대사를 둘러싼 논쟁의 중심에는 항상 박정희가 있었다. 2012년 선거가 노무현 대 박정희 패러다임으로 진행된 것 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결과는 박정희의 승리였지만 만만치 않은 절반의 반대 세력이 있음도 확인한 선거였다. 현실 정치에 영향력은 박정희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려는 시도를 방해하는 것이 분명하다. 박정희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은 정파적 야합 또는 민주세력의 배신으로 매도되는 현실에서 더욱 그렇다. 또한 박정희에 대한 반대가 심지어 종복으로 비판당하는 현실에서 객관적이고 통합적 관점은 사라지고 악의적인 논쟁이 재생산될 위험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저서는 박정희의 공과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는 좋은 책이라 말할 수 있다.

건국과 부국의 공과를 제대로 읽자

“물론 미국의 묵인이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군통수권자 중 한 사람인 장면 총리는 수도원으로 잠적해 3일 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그동안 알려진 것과는 달리 장 총리는 미 대사관에 세 차례 연락해 쿠데타에 대한 미국의 대응조치를 물었다. 또 다른 통수권자인 윤보선 대통령은 ‘어떤 불상사와 희생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친서를 일선 군 지휘관에 보내 쿠데타에 내응하는 듯한 태도까지 보였다. 이런 한국 정치인들의 유약하고도 근시안적 태도가 미국의 묵인을 가져왔다.”

저자는 우선 미국이 박정희의 군사정권을 묵인하고 방조했다는 시각에 반대한다. 5.16은 어디까지나 한국인들의 선택의 문제였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나는 군인 통치하에서 정치적 파쇼화의 경향을 걱정하면서, 사회경제적으로 ‘구악舊惡’이 매질당하는 것에 대한 후련함이 뒤섞인 평가 때문에 흔들리고 있었다....군인정권이 18년이나 갈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그렇게까지 부패하리라고 예측하기도 어려웠다. (335p)

이영희의 회고를 보면 5.16을 대하는 당시 지식인들의 태도를 발견 할 수 있다. 당시 지식인들이 무기력하고 답답한 사회를 혁신 할 그 무엇을 갈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16 직후 지식인들의 침묵에는 제2공화국에 대한 근원적 실망감이 있었다. 5.16초기 군정에 대한 희망을 가졌던 지식인들의 희망은 곧 실망으로 변했고 민주화 세력은 끝까지 저항했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은 현재도 진행 중인 셈이다. 무엇이 이승만 박정희에 대한 불만의 핵심일까? 장면 내각이 5.16이 아니었다면 민주화와 경제 발전을 추진 할 수 있었다는 것이 불만의 이유 중 하나이다.

“산업화 초기 단계에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을 병행 추진한 예는 역사적으로 찾아볼 수 없다. 박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이라는 두 가지 선택 중 경제 발전을 택했다. 그것은 산업화 초기에 민주화를 이룬 경험적 사례가 없었고, ‘빵’ 없는 민주주의는 지탱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산업화가 성숙된 현 시점에서나 적용 가능한 병행발전론으로 박정희 정권을 단죄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는 대립보다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 박정희 비판의 핵심이다. 역사적으로 유럽 중 특히 영국을 민주화의 이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말 그럴까? “산업화가 성숙된 현 시점에서나 적용 가능한 병행발전론(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이루야 한다)으로 박정희 정권을 단죄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실제로 영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나라가 아니라 한국처럼 산업화를 거쳐 민주화가 된 대표적인 나라이다. 이 후 대부분의 국가들도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성공한 나라는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은 국가들은 권위주의 체제로 경제를 성장 시킨 것이 사실이다. 또한 동아시아 신흥공업국들도 다르지 않다. 아무도 이루지 못한 역사적 성취를 박정희에게만 강요하는 것은 지나치다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물론 비판을 넘어선 비난의 목소리도 크다. ‘이 책은 민주화 운동에 긍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던 김교수가 반개혁 세력과 야합(?)하면서 자신의 과오를 씻기 위해 기존 보수세력 보다 더 극단적인 전향을 보인 불편한 사례이다‘ 필자의 지인이 저자에 대해 비판한 내용이다. 보수세력을 옹호하기 위해 진보진영을 격하하고 매도했다는 것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일리가 있을 수 있지만 지나치다. 부정적인 점도 많았으나 경제성장의 물적 토대 없이 민주화를 이룬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은 이제는 진보진영이 받아들여야 할 불편한 진실 아닐까? 산업화와 민주화 양자는 대립적이라기보다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보자는 것이 김 교수의 진실이라고 필자는 판단한다.

“수정주의자들과 386세대는 한국 현대사 전체를 그들의 눈으로 재해석하려들었다. 그들에게 한국 현대사는 반민중, 반민족, 반민주의 역사였다. 그들에게 우리 현대사는 오욕의 역사이고, 지우고 싶은 대상이며 다시 쓰고 싶은 대상이었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지운다고 지워지는 것이 아니다.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이 시대의 지식인들은 극단적 대립을 지양하고 현대사의 부정적인 측면과 긍정적 측면을 편견 없이 객관적으로 분석 연구하여 그 교훈을 다음세대에게 전해야 할 것이다. <건국과 부국>은 좌파에 편향되었던 현대사를 객관적인 관점에서 재해석을 시도한 책이다. 좋은 술과 책은 세월이 흐를수록 그 가치를 더 인정받는다고 한다. 쓰여진 지 8년이 된 이 책,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을 받는 이 책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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