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섭 칼럼] 북핵 앞에서 핵무장보다 시급한 것

역사에 눈먼 광신자들, 국민을 '북핵 노예'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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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앞에서,
핵무장보다 시급한 것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북핵은 우리의 운명을 새로운 차원으로 바꿔놓고 있다.
2006년 제1차 북핵실험이 ‘핵무기를 제조할 의지도 능력도 없는 나라’라는 보증수표에 부도 판정을 내렸다면, 제3차 북핵실험은 북핵이 자위(自衛)적 수단일 것이라는 기대에 쐐기를 박았다.
북측의 발표처럼 북핵이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되면 우리가 북핵의 인질이 될 가능성은 커진다.
핵에는 핵으로 맞서야 한다는 핵무장론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핵무장을 주장하기에 앞서 우리가 처한 상황을 냉철하게 되돌아보고 생각을 가다듬어야 한다.

앞으로 북한 정권은 핵 우위에 기초한 사상공세를 펼칠 것이다.
우리 내부에는 민족사의 정통성이 북한에 있는 것처럼 가르치고 있는 교사와 지식인들이 있다.
이들의 역사관에 따르면 북한은 민족사적 정통성과 함께 핵무기를 가진 강국이고, 대한민국은 외세 의존적으로 이룩한 경제적 과실을 민족과 공유해야 하는 존재에 불과해진다.

돌이켜보면 이처럼 왜곡된 민족사관이 민족적 담판을 통해 핵을 막을 수 있다는 과신(過信), 그리고 같은 민족끼리 핵위협을 할 리가 없다는 맹신(盲信)과 무관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북핵을 민족적 자산으로 추앙하는 광신(狂信)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보다 북한에 민족사의 정통성이 있다는 역사인식은 김일성이 만주에서 일제에 맞섰던 ‘민족의 영웅’이었다는 학설로 뒷받침됐다.

김일성이 만주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무장투쟁을 벌였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김일성의 무장투쟁은 민족주의가 아니라 공산주의에 입각한 것이었다.
일본제국이 아니라 대한제국이 존속했더라도 공산주의자들은 무장투쟁을 벌였을 것이다.

1930년대 중국 공산주의자들은 반(反)민생단 투쟁의 와중에서 민족적 성향의 한인 공산주의자들을 대량으로 학살했다.
당시 김일성은 민족주의자가 아니라 공산주의자임을 입증함으로써 살아남았다.
김일성은 소련군 88여단에 입대해 대위 계급장을 달고 스탈린 대원수에게 충성을 바쳤다.
고려인 공산주의자들이 트로츠키주의자로 몰려 학살당하고 약 20만 명의 고려인이 강제 이주되는 과정에서 1만 명가량이 대량 몰살당한 사건이 벌어진 이후의 일이었다.

공산주의는 원래 민족이나 종교 같은 관념을 배격하는 사상이다.
그런데 1920년대 초 박진순 같은 공산주의자는 한국인들의 민족적 열정을 공산주의의 실현을 위해 활용하자고 했다.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무총리였던 이동휘는 백범 김구에게 ‘민족혁명’과 ‘공산혁명’의 2단계 혁명을 할 것 없이 처음부터 코민테른의 국제적 지도를 받자고 유혹했다가 백범에게 호된 비판을 받았다.

이후 민족주의적 성향을 가진 아버지를 공산주의를 받아들인 자식들이 서로 대신 죽여줄 것을 약속하는 ‘살부계(殺父契)’가 출현할 정도로 민족주의와 공산주의는 물과 기름 같은 관계였다.

1917년 볼셰비키 정변 이래로 폭력적 수단으로 역사의 ‘진보’를 이룬다는 신조를 가진 공산주의는 종교적 미신의 박멸을 외치면서 군중에게 지상천국에 대한 광신을 조장했다.
사이비종교가 내세에 대한 열망을 악용해 집단 자살극을 벌이듯이, 공산주의는 현세에서 천국을 만든다며 ‘반동’에 대한 대량학살을 자행했다.

공산주의에 내재된 이러한 폭력성을 직시하지 않고서는 광복 직후 무장봉기들의 배후에서 작동하고 있던 주요한 동력을 간과한 채 대한민국 대 민(民)의 구도에서만 대한민국 현대사의 비극들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스탈린과 마오쩌둥이 후원했던 6·25전쟁도 내전이자 민족통일전쟁이라고 가르치게 된다.

1994년 제1차 북핵위기를 맞이했던 문민정부에서부터 2006년 제1차 북핵실험에 봉착했던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정책결정자들은 북핵이 어떤 사상적 힘에 의해 추동되고 있는지를 간과했다. 일부 지식인은 사상으로서의 ‘반공’과 독재권력을 위해 오용된 ‘반공주의’를 구별하지 않은 채, 반공에 반대하는 것이 곧 지성적이라고 믿는 ‘반(反)반공주의’에 사로잡혔다.

유럽 좌파를 흉내 내면서도 때로는 유럽 좌파가 우파보다 더 치열하게 ‘반공’을 했던 역사를 읽지 않았다.
반(反)반공주의는 2010년 천안함 폭침의 배후에 있는 공산주의의 폭력성을 직시하는 것도 가로막았다.
히틀러에게 맞섰던 독일 교회를 본받아 1973년 ‘제2차 바르멘선언’을 발표하고 행동했던 종교인들이 북한 인권 참상에 대한 ‘제3차 바르멘선언’은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런 사상적 도그마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제3차 북핵실험을 목도하고도 대한민국은 우왕좌왕하고 있다.
한국 좌파의 일각이 ‘우리민족끼리’로 위장한 ‘김일성민족’론에 현혹돼 있다면, 한국 우파의 일각은 민족의 미래에 관심이 없다.
유럽의 반공좌파 같은 애국좌파, 진정한 민족공동체의 미래를 고민하는 진보우파는 미약하다.

이런 상태라면 우리 자녀들까지도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
이제는 북핵을 막지 못했던 사상적 미몽(迷夢)에서 깨어나야 한다.
애국좌파와 진보우파가 힘을 모아 북한 정권에 휘둘리지 않는 동시에 북한 주민을 포용할 수 있는 역사관과 민족관을 확립해야 한다.

(동아일보 2013.3.1 '동아광장' 전재)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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