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선진화포럼 /선진화포커스 제126호]

    1966년의 말레이시아, 그리고 한국
    -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을 보며, 47년 전 한국의 모습을 생각한다 -

    배 진 영  /월간조선 차장

     

    <영시의 횃불>이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은 1960년에서 1966년 사이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모습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부산 군수기지사령관으로 부임했을 때 <부산일보> 기자였고, 후일 청와대 사회문화비서관, 부산 MBC 사장을 지낸 김종신 씨다.

    이 책이 처음 나온 것은 1966년(이 해는 내가 태어난 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제5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후 첫 임기를 마치기도 전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 속에 그려진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모습은 사람들이 흔히 '박정희'라고 할 때 연상하는 3선 개헌, 유신 이후 권위주의적 지도자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말레이시아의 1인당 GDP, 한국의 3배


    이 책의 뒷부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해외순방에 따라나섰을 때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 책에 의하면, 이 여행을 위해 우리나라는 10만 5천 달러를 주고 독일 루프트한자 소속 보잉 707 전세기를 빌려야 했다.
    사실 이것만 해도 비약적인 발전이었다.
    그보다 2년 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독을 방문할 때에는 루프트한자 비행기 좌석의 일부를 빌려서 갔고, 그 비용도 서독정부가 대신 내주었으니까 말이다.

    말레이시아를 방문한 저자 김종신 기자는 감탄을 금하지 못한다.

    말레이시아 1차 산업의 수출액만 하더라도 연 20억 달러가 넘는다.
    작년도 우리나라 총 수출고가 1억 7천여만 달러이니 자그마치 15배가 넘었다.
    그뿐 아니라 국민 개인소득의 단면만 보더라도 평균 여섯 사람당 자동차가 한 대씩 돌아가는 꼴이어서 시골의 어느 농가라도 차고 없는 집을 보기 드물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자동차 총대수가 4만 1천 대인데 이곳은 겨우 인구 9백만에 150만대가 된다고 하니 그저 아연할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앞으로 연 1만 대를 생산한다 하더라도 150년 후에나 이 나라를 따라갈 수 있는 셈이다.


    말레이시아에 수출하는 우리나라 수출품이 타이어, 직물, 오징어라는 얘기도 나온다.
    저자는 이 책의 다른 페이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국민소득이 한국이 1966년 현재 연 100달러인데 비해 말레이시아 323달러, 태국 120달러, 자유중국 150달러로 일약 비약 도상에 있는 나라들이다.



    15년만의 역전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얘기들이다.
    저자가 우리가 말레이시아를 따라가려면 150년이 걸릴 것이라고 탄식하고, 우리의 3배가 넘는 말레이시아의 국민소득에 찬탄한 지 15년 후, 말레이시아의 수상이 된 모하마드 마하티르는 'Look East' 정책을 선언했다.
    한국과 일본에서 배우자는 정책이었지만, 주된 학습대상은 한국이었다.
    그만큼 15년 사이에 양국의 위상은 역전된 것이다.

    그 15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잘 살아 보자'면서 대한민국 전체가 떨쳐 일어났다.
    공장을 지었고, 새마을운동을 벌였고, 고속도로를 닦았고, 나라의 문을 열어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면서 수출입국(輸出立國)의 길로 일로매진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박정희라는 위인의 리더십이 있었다.

    1966년 <영시의 횃불> 초판 서문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물은 흐르지 않고 고여 있으면 썩는 법이다.
    지난날 우리의 역사가 고인 물과 같았다고 하면 잘못된 표현일까?
    그리고 고인 웅덩이에 고랑을 쳐서 흐르게 한 것이 바로 박정희 장군이라고 하면 과장된 표현일까?
    전혀 불가능하다는 전망이 없는 한, 안 하고 답보하는 것보다는 그리고 움직이지 않는 것보다는, 해보는 것이 낫다.
    왜냐하면, 역사는 한자리에서 엉거주춤하게 움츠려 있는 것보다는 움직이고 나아가야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처럼 박정희 전 대통령은 고인 웅덩이에 고랑을 쳐서 흐르게 했고, '해 보는 것이 낫다'는 생각으로 도전에 도전을 거듭했다.
    그것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리더십이었다.


    문제는 리더십이다


    혹자는 말한다.
    "박정희가 아니었더라도 그만한 경제성장은 가능했을 것"이라고.
    이는 리더십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소리다.
    히딩크라는 명장이 감독을 맡았을 때에는 월드컵 4강까지 올라갔던 한국 축구팀이 그 후로는 16강 진출도 허덕이고 있다.
    축구대표팀도 리더십에 따라 좌우되는데, 하물며 한 나라야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문제는 리더십이다!

    <영시의 횃불> 마지막 페이지에서 김종신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가장 훌륭한 지도자는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여태껏 우리가 치러 온 지도자 중에서 가장 나라를 위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 저자가 47년 전 했던 이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 이후 7명의 대통령을 겪었지만, 우리 국민들은 박정희 대통령을 ‘여태껏 우리가 치러 온 지도자 중에서 가장 나라를 위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사람', '가장 훌륭했던 대통령'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 박정희 전 대통령의 큰딸이 제18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과는 나라의 위상도 달라졌고, 국내외 환경도 많이 달라졌다.
    박근혜 새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의 리더십 가운데 좋은 것은 계승하고 시대에 맞지 않는 부분은 버리면서, 이 나라를 잘 이끌어 가기를 기원한다.

    5년 후,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이제 박근혜 새 대통령에게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