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섭 법무법인 태평양 창립자 겸 명예 대표변호사
<추풍령에서 태평양까지-법치주의를 추구했던 한 법조인의 초상>

일관된 보수주의자! 법치주의 시민운동의 전파자!

한국형 법무번인 설립자의 회고록

법치주의 운동을 위한 살아있는 야전교범
<추풍령에서 태평양까지>
김인섭 지음, 나남출판 펴냄


고진석 독서 컨설턴트


"저는 조영래 변호사처럼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인권을 지키는 것에 앞장서고 싶습니다.
로펌이라는 곳은 대체로 힘없는 사람들을 상대하지 않고 큰 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해 주는 곳이 아닙니까.
변호사의 사명은 로펌에서 개인적 영달을 위해 기업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힘없는 사람들을 돕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05p

로펌 태평양 소속의 변호사 김인만과, 저자인 김인섭 태평양 공동창립자 겸 명예대표변호사와의 사이에 주고받은, 음미해볼만한 대화 내용이다.

무례하게 말하자면, 로펌하면 필자에게 떠오르는 단어가 [재벌 이익의 대변인]이다.
재벌회장들의 불법과 탈법을 교묘한 논리로 변호하면서 영리와 영달을 추구한다는 것이 일반인들이 가진 로펌의 이미지이다.
그러면서도 내 자식, 친척 또는 선후배가 로펌에 들어갔다고하면 축하하면서 좋아한다.

법조인에 대한 불신은 법치주의가 자리를 잡지 못한 탓이 크다.
인권변호사는 우러러보지만 어쩐지 불편하고, 로펌변호사는 좋아하지만 뒤에서 욕을 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유를 물어보면, 로펌 변호사는 영리영달을 꾀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란다.

정말 그럴까?
책에 나온 저자의 답변은 이렇다.

"이봐. 현실을 그렇게 단선적으로만 보는가.
우리는 대기업과 기업주의 편을 들거나 노동자들을 억압하는 일은 하지 않네.
그야말로 ‘법치주의’ 원리에 따라, 그들 각자의 몫을 조화롭게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평화질서를 유지케 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역할이지.
법의 지배이념의 진정한 파수꾼인 우리야말로 전형적인 인권변호사지."
   -305p


보수주의자!
필자가 이 책을 읽고 떠오른 단어이다.

보수라는 단어가 언제부터인가 네거티브한 단어가 되었지만, 사실 그 뜻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문제는 지켜야할 가치가 없이 무조건 자신의 영달을 위해 수(守)하려는 세력들이다.
진짜 보수는 지켜야 할 가치를 알고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온몸으로 실천하는 사람이 아닐까?

저자(김인섭)는 법치주의에 가치를 보(保)하고 수(守)하는 진짜보수이다.
보수적인 제도권 변호사!

민주화 운동세대는 필자부터도 제도권에 가담한 사람들을 색안경을 끼고 본다.
실제로 그 분들을 공부하려는 노력 없이 작은 트집거리를 잡아 비판한다.

물론 대의적 비판은 중요하나 무가치하고 저질적인 인신공격은 우리 사회에서 좌나 우 모두 없어져야 할 악습이다.
주로 인터넷에서 싸움이 많이 일어난다.
인터넷으로만 세상을 판단하는 것은 큰 문제이다.
인터넷은 보는 매체이고, 책은 읽는 매체이다.
보는 매체인 인터넷은 주로 자신이 하던 생각을 강화시키는 경향이 있고, 책은 읽는 매체로 사색을 유도하기 때문에 생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이런 점에서 한참 세상을 보는 시선이 만들어지고 있는 젊은 후학들이 꼭 읽어봐야 할 만큼 가치가 있는 책이 이번 달에 소개하는 <추풍령에서 태평양까지>(나남) 바로 이 책이다.


다소 촌스러운 책제목에 담긴 깊은 속뜻


<추풍령에서 태평양까지-법치주의를 추구했던 한 법조인의 초상> 처음 이 책 제목을 듣고 촌스럽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책을 읽으면서 추풍령은 저자의 고향이며, 태평양은 저자가 설립한 로펌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법관 출신이다.
사회에서 판사들에 대한 평판은 솔직히 우호적이지 못하다.
이유는 권위적이라는 것이다.
권위가 꼭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형식적이고 독재적인 권위이다.

저자도 권위가 있다.
그러나 저자의 권위는 투명성과 소통을 바탕으로 한 권위이다.
우리가 아는 사회 지도자들이 말은 개방적으로 하지만 행동은 권위적인 경우가 많은데 비해, 저자는 생각과 실천이 분명한 사람이다.
그는 창업자로써 자신의 이익을 손해 보면서도, 그는 회사의 재정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하여 조직의 신뢰를 받는다.

"나는 처음부터 언로를 활짝 개방했다.
조금 거창하게 말한다면 이것은 나의 철학에서 나온 것이다."
   -288p


소위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사람들을 보면, 말로는 민주주의를 이야기 하지만 막상 자신은 독선적인 권위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는 누구처럼 거창하게 민주주의 원칙을 팔고 다니지 않았지만, 민주주의 이념에 대한 실천력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 이 책을 읽은 필자의 판단이다.

"우리들은 두 변호사에 1명의 비서를 두는데 대표변호사는 비서가 3명이나 필요하냐?"
   -290p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주니어 변호사가 저자에게 한 말이다.

“그래, 참 좋은 질문을 했다”

그는 예민한 질문들을 공개적으로 하게 하고 직접 답변을 한다.

“우리가 이렇게 모든 문제를 툭 터놓고 이야기하고 진지하게 토론하면서 민주적으로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어찌 우리 태평양의 장래가 밝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291p

오양호 태평양 변호사의 말이다.

필자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큰 감동을 받았다.
소통의 진성을 아는 사람이 바로 저자 김인섭이다.

저자 김인섭은 충청도 영동의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가난과 6.25 한국전쟁 탓에 학교를 자주 옮겨 다니느라,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공부는 잘 했으나 졸업장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재능을 아까워한 스승과 지역 유지들의 추천서 덕분에 고려대 법대에 입학하고, 입주과외 때 만난 좋은 학부모 덕분에 뜻을 세워 법관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그는 1972년 유신 출범 직후 판사직을 그만두려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가 79년 12.12 쿠데타를 보면서 법관직을 그만둔다.

저자 김인섭은 법무법인 시대를 연 ‘1세대 변호사’이다.
최초의 한국형 로펌 태평양은 초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1980년대는 혼란의 시기였다.
법률 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시스템이 미비한 상태에서 경영은 어려웠고 심지어 집에 생활비를 가져가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다행히 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고비로 경제가 성장하면서 어려움을 극복하게 된다.

태평양을 한국형 로펌이라고 하는 이유는 김앤장과 달리 창립 멤버들이 유학파가 아닌데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평생 헌신해온 최고의 가치,

법치주의


법치주의!
책에서 저자가 일관되게 쓰는 단어이다.

책에는 18년간 경제성장과 유신시대 그리고 5공화국 법치주의의 위기 속에서 판사로 이후 22년은 변호사로 민주화 시절을 회고한다.
그는 격동의 시대에 법치주의를 지키려 최선을 다한다.

그가 책에서 말하는 일화들은 법치주의를 지키려는 그의 성품이 잘 들어 나있다.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사건은 삼성의 입장에서는 지우고 싶은 기억일 것이다.
저자는 당시 주심판사로서 피고인 이창희(이병철 삼성 창업자의 차남)의 병보석을 불허한다.
삼성과 중앙정보부의 상상을 초월한 로비에도 법치주의의 원칙을 포기하지 않는다.

‘민족주의비교연구회(민비연)’ 회원들을 중앙정보부가 간첩으로 조작하려 했을 때, 저자는 이 회원들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다.
이 사건은 김형욱 정보부장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과도한 충성이 원인이 된 사건이다.
김형욱을 몰락에 길로 이르게 한 원인이 되기도 한 사건이었다.
무시무시한 정권의 압박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법치주의에 입각한 소신 있는 판결을 내린다.

이명박 대통령 신원보증!
1964년 한일회담 반대 데모로 구속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고려대학생 이명박의 신원보증을 서주게 된다.
저자는 그 사실을 잊고 있다가, 10여년 뒤 30대 초반의 청년이 ‘현대건설 상무’ 명함을 들고 찾아왔을 때에야 그 이름을 알게 된다.
그렇게 두 사람은 테니스 친구가 됐고, 태평양합동법률사무소를 열었을 때 첫 고객이 바로 현대건설이었을 정도로 인연이 깊었다.
그 인연은 현대그룹 법률자문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저자는 96년 국회의원 당선을 축하하는 골프회동 이후로는 직접 만난 적이 없다고 한다.
이후 이명박 대통령과 저자의 관계를 의혹의 시선이 있는 것이 사실이나, 필자의 판단으로는 어디까지나 루머일 뿐이라고 판단된다.

저자가 정권에 가까이 갈 욕심이 있었다면, 이 책에서 보듯 현 정권이 아니라도 기회는 많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법치주의는 말로는 쉽지만 실현되기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 인식이다.
왜 법치주의 실현이 어려운가?
저자가 보는 원인은 집권자와 국민 개개인의 규범의식이 부족해서다.
가부장적 권위를 가진 법 위에 군림 했던 군사독재로 ‘법은 있는 자만을 위한 것’이라는 회의론이 생겼고 ‘배고픈 병은 참을 수 있으나 배 아픈 병은 참을 수 없다’고 선동하는 정치인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민주화 이후에도 특수상황을 핑계로 법을 편법 운영해서 법의 생명인 절차적 정의를 경시하는 풍조를 만연시켰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는 이 문제를 탄식만 하지 않고 시민운동을 통해 법치주의를 전파하려 한다.
바로 그게 재단법인 '굿소사이어티'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빚을 많이 진 사람',

자칭 빚꾸러기의 사연


‘빚꾸러기(빚을 많이 진 사람)’ 저자는 1977년 부장판사로 승진한 뒤 단독 집무실과 운전사가 딸린 관용차를 제공받고는 스스로를 빚꾸러기라는 자각을 갖게 됐다고 고백했다.
자신에게 제공되는 혜택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여타 공직자들과 비교되는 모습이다.

그는 빚(?)을 갚기 위해서 사회운동을 시작한다.
2002년 현역 법조인에서 은퇴한 후에는 법치주의를 내건 시민운동 '굿소사이어티' 활동이 그의 빚 갚기이다. 그는 '굿소사이어티'를 통해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의 화해, 보수와 진보의 화합, 사회통합과 토론문화의 정립 등을 주창한다.

어떻게 갈등을 극복하고 공동체의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을까?
답은 헌법에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지금의 헌법은 과거 수십년간 독재정권과 싸워서 얻어낸 귀중한 선물인데, 문민정권 20년 동안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우리 스스로 짓밟고 망가뜨리고 있다고 주장 한다.

왜냐?
법치의 틀을 벗어난 민주주의는 그 내용이 아무리 훌륭해도 결국 허구로 끝난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공동체가 법의 정신에 입각하여 법을 존중하고 지키면 공동체의 화합과 합의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것이 저자가 주장하는 ‘법치주의’ 이다.

필자가 보기에 지금은 비록 미약하다 해도 저자의 법치주의 운동의 결과는 창대할 것이라 확신한다.
필자의 확신에 대한 근거를 만들어 준 소중한 책이 바로 이 책 <추풍령에서 태평양까지>이다.


<책 목차 소개>

•책머리에  17


제1부  청운의 꿈, 가정 그리고 스포츠


내 고향 추풍령  31

나의 양친  33

꿈 많았던 어린 시절  36

아버지의 금고를 열다  40

대전중학교 재학 중 터진 6ㆍ25 전쟁  42

6ㆍ25 전쟁에 대한 나의 생각  49

졸업자격 없이 치른 고대 입학시험  54

가정교사와 대학생활  59

1950년대 말의 최전방 병영  64

과락의 좌절을 딛고 고시에 합격  69

미국유학을 단념시킨 평생의 반려  72

현모양처이자 약제사ㆍ시인이던 나의 조강지처  78

스포츠와 나의 인생  89

법조계에 테니스 바람을 일으키다  91

골프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  95

바둑과 나  100



제2부  법과 사회정의, 그리고 현실 사이에서


법관의 길을 택했지만  105

일본에 법치주의를 정착시킨 오쓰 사건  109

당신이 중정직원이라는 것을 어떻게 믿겠느냐  114

1964년 6ㆍ3 사태, 그리고 나와 MB(17대 대통령)의 인연  117

매춘여성도 인권이 있다  120

사법부 독립을 유린한 무장군인 법원 난입사건  123

법리를 놓고 부장판사와 대립  126

병보석을 불허한 한국비료 밀수사건  131

첫 특가법 적용이 중정과 경호실 간부들이라니  143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146

어처구니없는 지식인들과 동백림 간첩사건  150

김형욱의 입신양명을 위해 중정이 조작한 민비연사건  158

잊을 수 없는 실수담  163

자수나 다름없는 남파간첩이건만  166

제1차 사법파동과 나의 얄궂은 운명  170

법원행정처장의 탈선과 나의 사표투쟁  177

대통령의 처분을 취소시킨 행정소송 판결  183

재판연구관으로 특별법 분야를 개척  188

사법연수원 교수의 고뇌  198

법관 연수계획을 둘러싼 갈등과 고민  202

새내기 법조인을 법률기술자로 길러내서는 안 된다  205

공직자로서 처음으로 전용 승용차를 제공받다  214

-못난 빚꾸러기와 나쁜 빚꾸러기  215

부당한 판례를 변경시켜라  220

법관은 고독과 보람을 먹고 사는 공직자다  222

제3부 법무법인 태평양에 모든 것을 걸다


보람 없는 법관직을 떠나다  227

한국적 국제로펌의 모델을 설립하겠다는 꿈을 품고 변호사 시작  239

전관예우를 포기하고  243

이런 성격의 사건은 수임할 수 없다  249

정치입문의 권유를 뿌리치다   260

마침내 현대식 국제로펌 태평양을 설립하다  265

개소식의 2가지 약속   269

6ㆍ10 항쟁, 그리고 마주친 시련  275

경리를 완전히 공개하다  279

민주적 관행을 쌓고 또 쌓아  287

태평양의 정체성  295

인재양성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300

규모의 성장에 상응하는 직장문화를 내실화하다  312

정도를 걷는 로펌  318

국제화 시대의 로펌  325

은퇴를 대비하여  332

은퇴 후의 법치주의 운동[(재) 굿소사이어티 운동]  336

역사에서 교훈 찾기: 민주시민 의식교육의 제창  340

함께 공유하고 싶은 시대적 의미가 있는 몇 가지 사건  346

1. 재일교포들의 외환관리법 위반사건  346

2. 신군부의 12ㆍ12 쿠데타와 박준병 장군의 무죄  353

3. 망원동 유수지 수문 붕괴사건(여론재판과 법치주의)  364

4. 생수를 마시는 것은 ‘행복추구권’인가, 위화감의 원흉인가  369

5. 괘씸죄로 해체된 재벌의 사돈이 된 죄  376

6. 지적재산권에 대한 무지가 초래한 비극  383

7. 교회도 국가의 법을 준수해야 한다  389

8. 파탄지경에 이르던 실크리버 골프장의 분쟁을 화해로 해결한 보람  395

제4부  부 록


1996년 법무법인 태평양 신년사  407

법무법인 태평양 창립 16주년(법인설립 10주년) 기념사  411

법무법인 태평양 창립 19주년(법인설립 13주년) 기념사  419

법무법인 태평양 창립 22주년 기념사(퇴임사)  423

(재) 굿소사이어티 선언문  441

법무법인 태평양 연도별 전문가 영입명단  443

법무법인 태평양 연혁  450



•발문

- 東泉동산을 바라보며_채이식  451

- 태평양은 ‘이익집단’이 아닌 ‘가치집단’임을 강조_이정훈  456

- 법의 따스함과 지혜로움을 실천했던 법치주의자_안영수  460


•金仁燮 年譜  464



<저자 김인섭(金仁燮) 약력>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1961)

서울대학교 사법대학원 (1963)

서울지방법원 판사 (1963~1972)

서울고등법원 판사 (1972~1974)

대법원 재판연구관 (1974~1977)

서울민사지방법원 부장판사 겸 사법연수원 교수 (1977~1980)

사법연수원 자문위원 겸 강사 (1980~1990)

변호사 개업 (법무법인 태평양 설립, 1980)

연합통신 법률고문 (1981~2004)

감사원 정책자문위원회 위원 (1983~1985)

대한변호사협회 이사 (1984~1985)

조달청 법률고문 (1984)

서울지방변호사회 이사 (1985~1988)

노동부 산업재해심사위원회 위원 (1986~1987)

사법제도개선심의위원회 위원 (1990~1995)

한국은행 금융분쟁조정위원회 위원 (1991~1998)

종합유선방송위원회 위원 (1992~1998)

신한은행 희망재단이사회 임원 (1997~2006)

국세청 법률고문 (1998~2004)

하와이 East-West Center 객원연구원 (1999)

재단법인 굿 소사이어티 이사장 (2004.4~2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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