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산업안전실장의 응급조치로 죽음 막았지만 현재 뇌사상태치료 위해 모든 조치…민노총 사실 왜곡 심해 가족 동의 아래 유서 공개
  • “여보 미안해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고 고생만 시켜서... 아이들을 부탁해.”


    지난 8일 오후 10시 자살을 기도한 쌍용차 노조원 류 모 씨(50)는 가족들에게 미안해 했다.

    “유서에서 쌍용차에 대한 정부의 안일한 대책, 정치권에 대한 원망, 해고 노동자들의 집단적 행동으로 인한 불안감, 쌍용차의 어려운 현실 등에 대해 솔직히 토로했다.”


    류 씨의 유서를 공개한 쌍용차 노사의 설명이다.

    “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가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류 씨의 자살기도에 대한)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있다.
    때문에 가족 동의하에 유서내용을 밝히는 것이다.”


    조립 2라인(로디우스, 체어맨 생산조립라인)에서 일하던 류 씨는 올해로 입사 23년 차였다.
    그는 ‘존경하는 사장님 그리고 조합장님께 드립니다’라는 제목의 A4 6장 자필유서를 남겼다.

    유서에는 2004년 7월 쌍용차를 중국 상하이차에 헐값으로 넘겼던 노무현 정권과 쌍용차 노사만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야권 정치인들, 민노총에 대한 비판과 원망이 가득했다. 그 중 일부다.

  • ▲ 2004년 7월 정부가 쌍용차를 상하이차에 매각할 당시 <연합뉴스>의 보도 중 일부.[보도 캡쳐]
    ▲ 2004년 7월 정부가 쌍용차를 상하이차에 매각할 당시 <연합뉴스>의 보도 중 일부.[보도 캡쳐]



    “지지난 정부(노무현 정부)와 금융자산공사, 산업은행이 앞장서서 3,000억 원씩 흑자 나는 회사를 부실매각하고, 회사 담보나 받아서 부실화 시키고, 급기야는 떠나가는 사태.
    이 모든 것은 현장 사람들이 잘못한 게 아닌데 지금도 구조조정에만 초점을 맞추는 정치권과 해고동료들 안타깝고 원망스럽습니다.”

    “정치권의 부실매각만 없었어도, 구조조정한 회사를 정부에서 제대로 지원만 했어도, 정리해고된 동료들의 투쟁방향만 올바랐어도 무잔업에 라인, 죽어있는 조립2팀이 아니었을 텐데 너무도 가슴이 아픕니다.”

    “무잔업 3년 불규칙했던 급여보다 더욱 더 가슴이 아픈 건 신차개발 한 대도 이루어지지 않는 회사의 현실입니다.”


    당시 정부가 미국 GM에 매각된 대우차(현 한국GM)와는 너무 다르게 ‘대응’한 점도 비판했다.


  • ▲ 2012년 9월 국회에서 '쌍용차 국정감사' 주장이 나온 뒤 새누리당 이완영 의원이 지적한 내용.
    ▲ 2012년 9월 국회에서 '쌍용차 국정감사' 주장이 나온 뒤 새누리당 이완영 의원이 지적한 내용.


    “대우차는 해외매각을 하고도 6조 원이 넘는 자금을 산업은행에서 지원받았지만, 우리 회사는 정리해고라는 특단에 아픔을 겪었지만, 제대로 된 지원은커녕 아직도 정상화에 발목을 잡는 정치권과 노동계.”
     
    “정권이 바뀌고 국정조사도 한다는데 그 이전에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 전전 정부와 정치권에서 책임을 지고 지원과 회사 장래를 약속받게 되는 게 우선인 것 같습니다.”


    2009년 회사 동료들을 향해 ‘흉기’를 휘두르고, ‘지게차’로 돌진하며 ‘공장 폭파위협’까지 했던 일부 해고 노동자들에 대한 강한 원망도 있었다.

  • ▲ 2009년 7월 '평택 쌍용차 사태' 당시 같은 노조원들을 향해 지게차 앞을 개조해 돌진한 장면. 이 일로 수십 명이 부상을 입었다.
    ▲ 2009년 7월 '평택 쌍용차 사태' 당시 같은 노조원들을 향해 지게차 앞을 개조해 돌진한 장면. 이 일로 수십 명이 부상을 입었다.

    “해고된 동료들도 그렇게 공장에 돌아오길 원한다면, 자금지원부분에 동력을 쏟아 회사 정상화에 앞장서야 하는데 신차출시 시장이나 모터쇼에 가서 시위를 해 회사 이미지나 영업에 방해 행위가 되는, 정말이지 통탄스럽고 가슴 아플 뿐입니다.”


    류 씨는 유서에서 회사에 대한 애정과 함께 그동안의 힘들었던 생활고에 대해서도 밝혔다. 


    “구조조정으로 급여가 삭감되고, 제때 지급이 안 되고 저 같은 사회적 약자한테는 너무나도 고통이었습니다.
    1년, 2년 생활은 궁핍해 지고 아이들 학비, 병원비 등 모자라는 돈을 빌리고 또 빌리면서 살아도 쌀독에 쌀이 떨어져 아이들 라면 먹인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답니다.”

    “생산라인에서 오로지 일하는 즐거움으로 회사발전에 기여해 왔습니다.
    힘들고 어렵지만 최선을 다하는 마음가짐으로 직장생활에 임했습니다.”
     
    “저는 죽어서도 쌍용인으로 남으렵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회사, 최고의 쌍용차가 되기를 기원하며 지키겠습니다.
    저는 쌍용에 뼈를 묻겠습니다.
    꼭 정년을 채우려 했는데 여기까지 인 것 같습니다.
    용서하십시오.
    무잔업 3년 너무도 길고 힘들었습니다.”

  • ▲ 2009년 7월 '평택 쌍용차 사태'를 진압한 경찰이 확보한 지도부의 비상식량. 당시 점거노조 측은 "먹을 물과 식량이 없다"고 언론플레이를 했다.
    ▲ 2009년 7월 '평택 쌍용차 사태'를 진압한 경찰이 확보한 지도부의 비상식량. 당시 점거노조 측은 "먹을 물과 식량이 없다"고 언론플레이를 했다.


    류 씨는 8일 오후 10시 자살을 기도했으나 이를 본 산업안전보건실 허현진 실장의 응급조치로 죽음은 막았다. 그러나 뇌사상태에 빠졌다.
    지금은 서울 삼성의료원에 입원 중이다.

    류 씨의 담당 의사는 “동공이 열린 상태로 뇌신경에 대해서 장담하기는 힘들며 회복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신장 기능은 처음보다 많이 좋아졌다.”라고 소견을 밝혔다.
     
    쌍용차 노사는 ‘희망텐트’ 등을 앞세워 ‘정치적 개입’을 시도한 민주통합당 의원 등 정치권과 대표성을 상실한 ‘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 해고자들이 이런 사태를 초래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쌍용차 노조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강구해 류 씨를 반드시 살려내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정권이 바뀌는 시기에 평택 철탑을 불법점거 중인 ‘희망텐트’와 해고노동자 등을 내세워 회사 내부에 개입하려는 민노총 금속노조와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 등 정치권에 대해서도 크게 분노하고 있다. 


    “류 씨의 자살기도에 대해 회사가 공식입장을 표명하기 전임에도 ‘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는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있다.
    때문에 가족 동의하에 이렇게 류 씨의 유서내용을 밝히는 것이다.

    내부적 동의 없이 정치권에 의해 쌍용차가 휘둘린다면 쌍용차 조합원에 대한 정면도전으로 간주하고 투쟁에 돌입할 것을 선언한다.

    현재 쌍용차 노사는 무급휴직자 복귀 방안을 갖고 노사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유서 내용처럼 아직도 현장의 안정화가 불확실하지만 고통을 분담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위해서 결자해지의 입장에서 복귀절차를 밟고 있다.

    정치권에서 한쪽 방향만을 놓고 갈등을 유발한다면 쌍용차 노조는 더 이상 간과하지 않을 것이다.”

  • ▲ 2009년 7월 '평택 사태' 이후 쌍용차 노조원은 투표를 통해 민노총에서 탈퇴했다. 당시 투표율.
    ▲ 2009년 7월 '평택 사태' 이후 쌍용차 노조원은 투표를 통해 민노총에서 탈퇴했다. 당시 투표율.

    현재 전체주의 성향 좌파 언론이 보도해주는 ‘쌍용차 노조’는 ‘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로 쌍용차의 공식노조가 아니다.

    쌍용차 노조원들은 2009년 ‘평택 쌍용차 사태’ 이후 민노총의 극단적인 투쟁방식과 같은 조합원에게까지 폭력을 휘두르는 것에 반발해 2009년 9월 조합원 73.1%의 뜻에 따라 민노총을 탈퇴했다.

    그럼에도 민노총은 여전히 “쌍용차는 민노총 산하 노조”라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