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9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배인준 논설주간이 쓴 '김 위원장, 웃고 있을까'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선명한 TV 화면을 통해 7년여 만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모습을 실컷 봤다. 세계 대세를 비웃고도 건재한 지도자이지만 세월은 이기지 못한 듯했다. 그의 늙어 감은 다른 누구의 생로병사보다도 특별한 의미를 우리에게 던진다. 그는 곧 북한체제 자체요, 그가 변해야 북한이 변하기 때문이다. 

    2001년 정월 김 위원장은 1983년 이후 18년 만에 상하이를 견문했다. 그가 받은 충격은 “상하이는 천지개벽됐다”는 한마디에 녹아 있었다. “상하이의 눈부신 발전상을 보니 중국 공산당과 인민의 선택이 옳았다”는 어록도 그때 남겼다. 중국의 선택은 다름 아닌 ‘개혁 개방’이다. 그래서 당시 세계는 북한의 개혁 개방 가능성을 설왕설래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주 평양에서 개혁 개방 얘기를 꺼냈다가 본전도 못 건졌다. 누가 뭐래도 하고 싶은 말은 참지 못하는 노 대통령이 “개혁 개방은 북측이 알아서 할 일이다. 그런 말을 쓰면 안 되겠다”고 세계 앞에 실토한 걸 보면 김 위원장의 모진 반응이 짐작된다.

    상대적으로 많은 지하자원과 한반도 전체 산업시설의 73%를 보유했던 북의 경제가 남한에 역전당한 것은 1972년이다. 북의 작년 1인당 소득은 1100달러로 남의 17분의 1이고, 수출액은 9억5000만 달러로 344분의 1에 불과하다. 마약, 가짜 담배 같은 것도 통계에 포함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반(反)개방이 ‘인민’에 안긴 비참한 삶

    인천공항에서 뜨고 내리는 항공기는 하루 600대, 한 주에 4200대꼴이다. 평양 순안공항의 국제항공노선은 중국의 베이징 다롄, 러시아의 모스크바 하바롭스크 등과 연결되는 주 30여 편이 고작이다. 이 단면도 북한 반(反)개방의 현주소다. 체제선전극 아리랑 공연에 외국인을 유치하면서 가끔 증편되긴 한다.

    중국은 1978년 선부론(先富論)을 선창한 덩샤오핑 주도 아래 ‘경제의 현대화 건설, 사상 해방, 문호 개방’으로 대전환했다. 1977년 세계 11위이던 총생산이 30년도 채 안 된 작년 세계 4위가 됐다. 이제 중국 경제가 기침을 하면 세계가 감기 들 판이다. 베트남도 개방의 새로운 기적을 이뤄 내고 있다.

    세계의 신(新)성장지역으로 국제자본을 빨아들이고 있는 아시아에서 이방지대가 있다면 북한과 최근 민주화운동이 다시 일어난 미얀마(옛 버마) 정도다. 천연가스 석유 목재 등 자원이 풍부한 미얀마가 지구촌 최빈국으로 전락한 것은 사회주의 군사독재, 폐쇄적 경제정책과 고립의 산물이다.

    북한 주민의 평균수명은 남한보다 남자는 13년, 여자는 14.5년이 짧다. 남자 평균 키는 158cm로 남한보다 15cm 작다. 반세기 남짓 동안 개혁 개방을 거부한 이른바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2300만 ‘인민’에게 안긴 ‘선물’이 이런 것이다. 평양을 제외한 지역과 평양 간의 딴 세상 같은 양극화, 폭우만 오면 무너지는 산하, 농작물이 제대로 자랄 수 없게 돼 버린 토양…. 이런 현실도 개혁 개방을 통한 국부(國富) 증진 및 민생 개선보다는 체제 유지에만 매달려 선군(先軍)독재에 올인한 결과다.

    중국에서는 후진타오 집권 2기(올해 말∼2012년 말)를 앞두고 일찌감치 후계자 경쟁이 치열하다. 마오쩌둥-덩샤오핑-장쩌민-후진타오에 이은 5세대 지도자의 가시화 단계에 진입한 것이다. 비록 공산당 1당 독재체제이긴 하지만 덩샤오핑은 ‘평화적 후계구도 창출’의 전통을 확립해 1인 독재를 막고 리더십 경쟁을 통한 권력교체의 길을 다졌다. 그래서 누가 지도자가 되건 개혁 개방이 체제를 위협하는 요인이 될 수 없었다. 오히려 개방의 가속화가 체제를 안정시켰다.

    ‘자유의 바람’ 막아 낼 수 있을지

    북의 김 위원장이 세습후계자 자리를 굳힌 것은 1974년이다. 하지만 그 10년 전부터 당에 들어가 후계수업을 받았다. 이미 1960년대 중반부터 김 부자(父子)의 머릿속에는 ‘영원한 김일성 종족의 국가 건설’이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다. 경제든 군사든 모든 국가경영의 대전제는 민생 향상이 아니라 독재권력 유지였다.

    김 위원장은 지금 65세다. 3세 세습이 지난날 자신의 승계만큼 쉽지는 않을 것이다. 대외 핵 게임과 대내 통제만으로 언제까지나 위기를 돌파하고, 주민들의 삶 속에 스며드는 자유의 바람을 막아 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