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철수는 왜 울면서 떠났을까?




    1. 안철수 후보는 울보였다.


    안철수후보는 울보였다. 계속 울면서 보채면서 힘들어하고 답답해했다.

    필자의 생각에 안철수가 본격적으로 징징거리기 시작한 것은 11월 14일 조찬기도회때 부터였다.

    그 기도회는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열렸다. 여의도 순복음교회는 전세계에서, 아니 지구상에서 존재했던 어느 교회보다 단일교회로는 가장 큰 곳이다. 이 기도회에 안철수는 참석하지 않았다. 그가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안철수가 불참한 것을 보고, 필자는 이렇게 생각했다.

    “안철수는 끝났구나.”

    현실적으로 보나, 종교적으로 보나 안철수가 불참한 것은 최대의 실착이다. 종교인이 아니라고 해도 그 날 그곳엔 우리나라의 많은 원로들이 모였다. 우리나라의 기독교 인구는 1,000만명 안팎이다. 세 명을 초청했는데 정말 피치 못할 사정도 없는데 참석하지 않은 것은 경솔한 일이다.



    기독교인들은 교회의 주인은 절대 주권자인 하나님이라고 생각한다. 교회에서 사적인 일도 아닌, 국가 지도자를 선출하는 공적인 자리에 초청했다. 그런데 안철수는 불참했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안철수가 하나님의 초청을 거부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난 안 먹어. 형 미워.”

    이제 막 일생일대의 중대사를 앞두고 타이틀 매치를 벌이려는 사람을 위로하려고 할아버지가 맛있는 음식을 차려놓고 초청했는데 안철수는 불참한 셈이다. 파티에 초청받았지만, 성질나서 이불 뒤집어 쓰고 우는 어린 아이와 너무나 닮았다.

    안철수가 조찬기도회에 결석한 것은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무지와 무감각을 그대로 보여줬다. 안철수가 보이지 않는 면을 보지 못하는 정신적인 소경 이라는 사실은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와의 협상 및 대결과정에서도 여실없이 드러났다.

    김지하 시인이 안철수의 지적인 깊이가 얕은 깡통이라고 했지만, 정신적인 면에서 보면 안철수는 소경이다.


    2. 끝까지 자기애에 빠진 에고이스트


    주변 상황을 객관적으로 돌아보지 못하는 깡통과 소경의 가장 큰 특징은 자기중심적인 에고이스트라 는 점이다. 에고이스트는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크게 화를 낸다. 그리고 그 탓을 다른 사람에게 돌린다. 변명과 핑계를 일삼으면서 자기 분에 못 이겨 극도로 예민한 상태에서 분통을 터트린다.

    안철수는 줄곧 울어댔다. 21일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그는 문재인과 말싸움을 벌이면서 거의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지엽적인 것에 매달리다가 자기 주장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사퇴 선언 역시 자기 중심적인 변명과 핑계와 울분과 좌절의 기록이다.


    "단일화 방식은 누구의 유불리를 떠나 새정치와 정권 교체를 바라는 국민의 뜻에 부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문재인 후보와 저는 의견을 좁히지 못했습니다."

    사퇴회견에서 안철수는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후보도 똑같이 말할 말한 상황들이 많았다. 안철수의 사퇴 선언은 자기 변명과 문재인 후보에 대한 책임전가 성격이 강하다.

    그리고 정해진 코스대로 그는 울었다. 그 울음이 정의에 대한 의로운 분노에서 나온 것이 아니요, 자기 뜻이 이뤄지지 못한 좌절감에서 온 치기어린 울음이다.


    3. 안철수의 좌절은 젊은이의 좌절을 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안철수를 날카롭게 분석만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안철수의 좌절과 울음과 분노에는 우리 사회 많은 사람들의 결함과 아픔과 좌절과 분노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안철수는 자기 뜻대로 하면 될 것이라고 믿었다. 자기가 이룩한 성과를 보면 모든 사람들이 박수치면서 영광의 자리에 앉혀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안철수 눈으로 보면 그를 반대하는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이나 문재인 후보는 기성정치의 낡아빠진 유산이요, 타파해야 할 현실의 벽이라고 책임을 넘겨 버린다. 안철수는 결코 자기가 실력이 부족하다고, 민주당의 뒤를 시커멓게 붙잡고 있는 어둠의 실체를 깨닫지 못했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안철수의 정치적인 행보는 사회에 첫 발을 디딘 초년생과 매우 닮았다. 그의 분노는 젊은이들의 분노이고, 자기중심적인 에고이스트와 같은 성향도, 지금 사회에서 자리를 찾지 못하는 수많은 30~40대의 그것을 닮았다.

    그렇기에 안철수가 떠난 그 자리를 보면서, 우리는 이 시대 젊거나 혹은 겉모습은 중년이지만, 아직도 어린 수백만명 혹은 수천만명의 아픔과 상처와 좌절을 읽어내야 한다.


    4. 단일화 후보가 아니고 나머지 후보 가 된 문재인


    문재인 후보는 안철수를 먹으려다 소화불량에 걸려 버렸다. 정상적인 단일화라면 문재인후보는 안철수로부터 축복을 받아야 했다. 안철수 후보를 소화할 능력이 없었다면 안철수와 손을 잡지 말았어야 했다.

    문재인 후보는 전투에서는 승리했지만, 전쟁에서는 졌다. 문재인 후보는 어떻게 하든지 안철수를 안고 가야 했다. 안철수를 아버지의 마음으로 끌어 안았어야 한다. 깡패두목을 연상시키는 ‘큰 형님’ 역할로는 부족했다.

    이제 유력한 대통령 후보는 두 명으로 좁혀졌다. 그런데, 문재인 후보는 단일화 후보가 아니다. 정상적인 단일화라면, 여론조사든지 뭐든지 그럴싸한 연극을 벌인 뒤, 두 사람이 서로 축하하면서 악수하고 상대방을 치켜 주는 그런 모습이었어야 했다. 아니면 두 사람이 담판을 지은 뒤 활짝 웃으면서 손잡고 나와 양보했다고 발표했어야 한다.

    “지금 이 순간부터 나 안철수는 문재인 후보님을 모시고 야권 단일화를 이뤘습니다.
    전제조건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쯤은 됐어야 마음 약한 유권자들은 울고 불고 손뼉치고 속아 넘어가지, 그래도 이길까 말까 한 상황이다. 안철수와 박원순이 작년에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을 때 얼마나 깔끔하게 이뤄졌는지 돌아본다면, 문재인 안철수의 단일화 협상과정이 얼마나 지저분하고 꽉 막힌 것인지 금방 비교된다.

    안철수는 문재인 후보의 등 뒤에 칼을 꽂고 떠났다. 문재인 후보는 그저 이기지도 떠나지도 못한 나머지후보가 됐을 뿐이다. 


    5. 문재인 안철수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아마 만나지 못할 것이다. 만나서도 안된다. 두 사람은 이미 여러 번 손발을 맞춰봤다. 남들은 모르게 둘만의 데이트 시간을 가졌다. “나와라, 나와라” 주문에 못 이겨 TV 토론회라는 공개데이트도 해봤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때 마다 이게 아닌데...이게 아닌데...였지만, 그래도 참으면서 어떻게 하든지 결혼하려 했다. 만나면 만날수록, 이건 정략결혼이야, 합치면 더 불행해질 것 같아...는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그래도 어떻게 해서라도 신방을 차리려 했다.

    신문보도를 보면 안철수는 사퇴회견을 하기 직전 문재인후보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그때 문재인 후보는 뭐라고 답변했을까? “정권교체를 위해 어려운 결심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뭐 이렇게 답변했을까? 그 마지막 전화가 왔을 때 문재인 후보는 무조건 잡았어야 했다.

    문재인 후보는 예의를 갖춰서 만나겠다고 하지만, 이미 다 깨져버린 신뢰에 의미 없는 일이다. 문재인 후보는 “나를 위해 한 번 더 쇼를 해 줄래?”라고 묻고 있다. 이걸 유권자들이 모를 리 없다. 안철수로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