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25일 사설 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현 정권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털어놓았다. 민주신당에 흡수 통합되는 열린우리당의 마지막 지도부의 인사를 받는 자리에서였다. 그는 대북송금 특검에 대해선 “민족적인 일을 정략적으로 상처 입힌 데 대해 사과했어야 했다”고 지적했고, 국정원 도청사건에 대해선 “두 전직 국정원장을 아무 증거 없이 구속했다”고 비난했다. DJ는 또 “국민의 마음이 떠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을 당선시켜준 민주당과의 분당 때문”이라는 말도 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요,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다.

    남북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5억 달러의 뒷돈을 북한에 건네준 것은 명백한 실정법 위반 행위였다. DJ는 ‘통치행위’라고 변명했다. 그러나 아무리 대통령의 통치행위였다 해도 사전 또는 사후에 국회나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밟았어야 했다. 그는 사실이 드러난 뒤에도 해명이나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런 뒷돈이, 북한이 핵폭탄과 미사일을 만드는 데 들어가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국정원 도청사건에 대해서도 DJ는 마찬가지였다. 과거 정보기관 도청의 피해자였다고 해서 본인의 대통령 재임 중에 벌어진 국정원 도청까지 정당화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도 DJ는 임동원·신건 전 국정원장과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이름까지 거명하면서 그들의 억울함을 강변했다.

    민심이 현 정권과 범여권에서 멀어진 것도 민주당과의 분당 탓이 아니다. 오히려 열린우리당은 분당 직후 치러진 2004년 4월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을 차지했다. 탄핵의 역풍이 큰 역할을 했지만 열린우리당이 내세운 ‘탈 지역주의’ ‘전국정당’ ‘정치개혁’ 등에 국민이 동조한 것이다. 이런 국민의 기대를 저버렸고 국정 운영에서 실패했기에 민심이 떠난 것이다.

    DJ는 올 들어 범여권의 통합을 수차례 주장했고, 그 뜻대로 됐다. 이제 범여권에 대한 영향력이 커지니까 자신의 과거 잘못까지 다 미화하겠다고 나서는 것인가. 전직 대통령으로서 품위를 지켜줄 것을 거듭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