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24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가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협상 중인 평화는 신기루와 같다. 지평선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가 달려가 잡으려고 하는 순간 사라지기 일쑤다. 그래도 권력을 잡은 사람에게는 신기루 같은 평화가 자주 집권 연장의 수단으로 이용된다.

    북베트남과 힘겨운 평화협상을 하고 있던 백악관 안보보좌관 헨리 키신저는 1972년 10월 22일 기자들 앞에서 득의만면(得意滿面)하여 “평화가 임박했다(Peace is at hand)”고 선언했다. 그날은 닉슨이 재선에 출마한 대선을 열흘 앞둔 시점이었다. 실제로 베트남에서 총성이 멎은 것은 그로부터 거의 3년 뒤의 일이다. 그것도 미국이 희망한 평화가 아니라 미국의 굴욕적인 패퇴를 통한 종전일 뿐이었다. 그 뒤 “평화가 임박했다”는 말은 집권세력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국민을 오도하는 거짓 선언의 대명사가 됐다.

    남북 정상회담 일정이 8월 말에서 10월 초로 한 달 이상 연기되어 대선 날짜에 바짝 접근함으로써 대선에 미칠 북풍의 힘은 두 배, 세 배 강해졌다. 10월 초면 대선을 두 달 조금 넘게 앞둔 민감한 때다. 구체적인 성과를 잠시 접어두고라도 노무현·김정일 회담의 여파는 한 달은 지속될 것이다. 그것은 범여권의 후보에게는 행복감(Euphoria)일 것이고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에게는 경계해야 할 후폭풍일 것이다.

    북한은 홍수 피해를 들어 정상회담을 연기하자고 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때 북한은 4·13 총선을 사흘 앞두고 정상회담 합의를 발표하자고 주장하여 뜻을 관철한 전례가 있다. 임동원 국정원장의 건의를 받은 청와대가 정상회담 발표를 총선 뒤로 미루자고 북한에 수정 제의했지만 북한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만큼 남한의 정치 행사에 개입하고 싶은 북한의 욕망은 강하다. 그래서 정말 홍수 때문인지 의심이 간다.

    홍수 때문이든 아니든 북한이 어차피 열리는 정상회담으로 북풍을 일으켜 남한의 정권교체를 막아 보려는 강한 집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아마도 북풍은 “평화가 임박했다”와 같은 평화 메시지의 모습으로 불어올 것이다. 정상회담 의제의 두 축은 남북 경제공동체와 한반도 평화정착의 문제다. 경제공동체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필요로 한다. 그 재원은 국민이 낼 세금이다. 경제공동체의 구상이 원대하면 원대할수록 그 타당성을 둘러싼 국민 간의 논란은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경제공동체는 범여권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는 북풍이 될 수가 없을 것이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MB 남북관계 구상’은 노무현 정부의 대북 지원 정책보다 더 구체적이고 체계적이어서 경제 쪽의 북풍은 차단할 수 있다.

    평화는 다르다. 한국전쟁의 당사국인 미국과 중국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는 범위 안에서 원론적인 한반도 평화선언 같은 것에 서명하고는 대선 투표일까지 두 달여 요란한 후속 이벤트를 연출하면서 대선을 평화 후보와 냉전·반(反)평화 후보의 대결 구도로 몰아가면 회색지대의 부동표가 평화세력을 자처하는 범여권 후보 쪽으로 움직일 가능성은 충분히 있을 것이다. 그런 유권자가 10만 명이 될지 30만 명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신기루로 끝날 공산이 큰 평화선언이 평양에서 나오면 국민은 그것이 키신저류의 “평화가 임박했다”는 아닌지 냉철하고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미국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 돈 오버도퍼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SAIS) 교수는 남북 정상회담이 대선에 임박해 열리는 게 걱정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평화선언은 평화에 도움이 안 된다. 핵 문제에 큰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나오는 평화선언은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다.”

    이명박 후보의 ‘MB 남북관계 구상’은 평화 부재의 경제 위주다. 반 쪽짜리 구상이다. 이명박 후보는 북풍이 휘몰아치기 전에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구상을 밝혀 ‘MB 남북관계 구상’을 크게 보완해야 한다. 물론 북한의 핵 포기가 대전제가 돼야 한다. 유권자들의 이성적인 판단만 믿는 낙관론은 위험하다. 평화에는 평화로 맞서 평화 후보 대 반평화 후보의 구도를 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