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3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 후보는 지난 21일 김수환 추기경을 예방한 자리에서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잔뜩 합의해 오면 다음 대통령이 이행해야 하니 걱정”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지난 6월 “내가 김정일 위원장과 도장 찍어 합의하면 후임 대통령이 어쩌지 못한다”고 한 것에 대한 우려였다. 한나라당도 “정상회담이 연기됐으니, 차라리 차기 정부로 넘기거나 최소한 대통령 당선자와 협의하에 회담을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자 청와대 대변인은 22일 이 후보를 향해 “현직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가로막는다”며 “사기업 대표가 하기에 적당한 발언”이라고 비난했다. “순진한 것인지 궁금하다” “인식 수준이 걱정”이라고도 했다. 청와대 홍보수석실도 나서서 한나라당을 향해 “철 없는 주장” “오만하다” “현직 대통령과 국가체계를 무시한다”고 했다. 청와대는 남북정상회담 문제까지 이렇게 막말을 하며 덤벼든다.

    10월 2~4일 회담이 끝나면 불과 76일 뒤에 새 대통령 당선자가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실효성 있는 정상회담이 어렵다는 것은 노 대통령도 알 것이다. 노 대통령 자신도 당선 뒤 김대중 정부의 정책 전반을 재검토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주역들을 감옥에 보내는 결정을 내린 게 바로 노 대통령이다.

    이런 상황을 가장 잘 아는 또 한 사람이 김정일 위원장이다. 그런 그가 임기 두 달 남은 남쪽 대통령과 무슨 무게를 실은 합의를 하겠는가. 정상회담에 이은 각종 후속 조치는 시간이 없어 할 수도 없게 돼 있다.

    그래도 무조건 밀고 가는 청와대의 태도를 보니 이번 정상회담은 내용이나 실효성이 아니라 대통령선거 직전에 한다는 그 시기가 가장 중요한 모양이다. 그 이유는 국민들이 대강 짐작하고 있는 것과 같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 귀에 남북정상회담의 실효성을 위해 회담을 다음 정부로 넘기라든지, 노 대통령 자신이 꼭 평양에 가고 싶다면 대선 후에 대통령 당선자와 상의하고 가라는 요청과 조언이 들릴 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