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20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28일로 예정됐던 남북 정상회담이 10월 2일로 연기됐다. 북한이 홍수 피해를 이유로 연기를 요청해 왔고, 우리 정부가 이를 받아들인 결과다. 물러나는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을 뽑는 선거를 불과 2개월 남짓 앞두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마주 앉게 된다니 생산적인 회담이 될지 의문이다. 회담이 북핵 문제를 비롯한 제반 현안에 미칠 영향을 생각한다면 졸속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차기 정권으로 넘기는 것이 순리다.

    연기 경위부터 석연치 않다. 북한이 그제 오전 9시 20분 “10월 초로 연기하자”는 전화통지문을 보내오자 정부는 오후 2시에 관련 회의를 열어 이를 수용했다. 그 짧은 시간에 무엇을 따져 보고, 무엇을 검토했는지 모를 일이다.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못 하고 북의 요청을 받아들였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남북 정상회담은 대통령의 평양 소풍이 아니다. 시기와 의제, 준비 절차 등 모든 것이 격에 맞아야 한다.

    북한 측의 설명대로 북 전역에 수재가 발생한 것은 맞다. 강성대국 운운하면서도 치산치수(治山治水)엔 손 놓아 400∼500mm의 비에 국토와 주민을 떠내려 보내는 북한 정권의 한심한 국가관리능력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아무튼 수해가 유일한 이유라면 10월 정상회담은 더더욱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북의 능력으로는 그때까지 복구 작업을 마치기도 어렵다. 차라리 북에 충분한 시간을 준 뒤에 회담을 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대선을 코앞에 둔 회담은 갖가지 정치적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범여권에선 벌써 “정상회담 분위기가 대선 직전까지 연장됨으로써 선거에 유리하게 됐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이 경계심을 갖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북한이 대선에 개입하기도 더 쉬워진다. 자칫하면 선거전이 정상회담 찬반 논전(論戰)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더욱이 10월 초 북에선 경축행사가 이어진다. 8일은 김 위원장의 노동당총비서 취임 10주년, 9일은 핵실험 1주년, 10일은 노동당 창건 62주년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하필 그 무렵에 평양에 가면 북의 정치적 선전에 이용될 가능성이 농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