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대표권한대행 모범사례, 제대로 평가받는 날 올 것
  • ▲ 바른정당 대구광역시당 창당대회 당시 대구시당위원장으로 추대된 주호영 대표권한대행이 인사말을 하고 있는 모습. ⓒ뉴데일리 사진DB
    ▲ 바른정당 대구광역시당 창당대회 당시 대구시당위원장으로 추대된 주호영 대표권한대행이 인사말을 하고 있는 모습. ⓒ뉴데일리 사진DB

    민법에 선관주의의무(善管注意義務)라는 개념이 있다.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 의무'를 말한다. 자기 재산을 다루는 의무(자기재산의무)보다 더 강화된 주의의 개념이다. 관리자는 남의 물건 맡기를 자기 물건 다루는 것보다 더 소중히 해야 한다는 취지다.

    '선량한 관리자'를 자처했던 바른정당 주호영 대표권한대행이 임기 마지막 시점에 홍역을 앓고 있다. 당내 잔류파 일각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빈 환영만찬에 대표권한대행으로 참석하는 것을 문제삼았기 때문이다.

    하태경 최고위원은 "모양새가 상당히 보기 좋지 않다"며 "탈당을 선언한 이상, 단 하루라도 대표로서 역할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공박했다. 유승민 당대표 후보는 심지어 국민까지 끌어들여 "국민이 판단해줄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주호영 대표는 당내 통합파와 자강파의 갈등이 불거진 이래, 일관해서 "대표권한대행과 원내대표로서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를 수행하는 게 우선"이라며 "선량한 관리자로서 (통합파와 자강파) 양쪽을 중재하겠다"고 해왔다.

  • ▲ 바른정당 중앙당 창당대회 당시 주호영 대표권한대행이 '투톱' 중 한 명인 원내대표로서, 정병국 초대 당대표와 당기를 흔들고 있는 모습. ⓒ뉴데일리 사진DB
    ▲ 바른정당 중앙당 창당대회 당시 주호영 대표권한대행이 '투톱' 중 한 명인 원내대표로서, 정병국 초대 당대표와 당기를 흔들고 있는 모습. ⓒ뉴데일리 사진DB

    이후 본인의 의중을 앞세우지 않고 당무에 헌신했다. 국민통합포럼 등 자강파가 중심이 된 세력에서 국민의당과의 정책연대의 필요성을 제기하자 "한국 정치가 양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중도 세력이 이끌어간다는 측면에서 아주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라고 화답하며, 김동철 원내대표와 연일 회동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애썼다.

    그 결과가 지난 3일의 정책협약서 교환이었다. 주호영 대표의 국민의당과의 연대 행보와 긍정 평가를 보며, 그를 통합파로 알고 있던 정치권 관계자들이 "왜 저러는거냐" "의도가 뭐냐"고 서로 물을 지경이었다.

    전당대회 개최가 논의됐을 때, 주호영 대표는 내년 연초 전대 개최를 제안했다. 특임장관과 청와대 정무특보를 지낸 탁월한 정무감각의 4선 의원으로서, 지금 전당대회를 열면 '당이 깨지는 대회'가 될 것임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제안대로 됐더라면 내홍은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으면서 지방선거가 다가올수록 몸값이 올랐을텐데, 자강파의 초조함 탓에 전당대회는 조기 개최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후 전당대회 전에 탈당해야 한다는 통합파의 조바심이 겹치면서 내홍은 걷잡을 길이 없게 됐다.

    5일 '최후의 의총'에서 유승민 의원 등 극소수를 제외한 대다수 구성원이 전당대회 연기에 동조했다. 대다수가 동의한 제안이 '전당대회를 한 달쯤 연기하자'는 내용이었으니, 애초부터 '선량한 관리자' 주호영 대표의 제안을 받았으면 사달이 날 일 자체가 없었을 것이 아닌가.

  • ▲ 바른정당 주호영 대표권한대행이 당 회의 도중 정병국 의원과 유승민 의원 사이에서 의견을 조율하고 있는 모습. ⓒ뉴데일리 사진DB
    ▲ 바른정당 주호영 대표권한대행이 당 회의 도중 정병국 의원과 유승민 의원 사이에서 의견을 조율하고 있는 모습. ⓒ뉴데일리 사진DB

    마침내 당이 깨지는 게 확실시되는 의총을 개회하며 "마음이 많이 무겁다. 여러분들도 무거울 것"이라고 말문을 연 주호영 대표는, 의총이 파국으로 끝난 뒤 취재진이 몰려들자 감정이 북받쳐오르는 모습을 보였다.

    충분히 예상된 결론이었는데도 "묻지 말아달라. 너무 잔인하지 않느냐"고 한 것에서, 이날 참석자 중 유일하게 분당(分黨) 상황에 대한 '진정한 슬픔'을 봤다는 평도 나온다.

    이처럼 원내대표 선출 이후로 당을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해왔고, 내홍이 불거진 이후로는 '선량한 관리자'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의아할 정도로 엄정중립을 지켜왔던 주호영 대표를 마지막 순간에 바른정당 잔류파 의원들이 떠나보내는 모습은 보기가 딱하다.

    유승민·하태경 의원의 공박에 결국 주호영 대표는 청와대 국빈 환영만찬에 불참해야만 했다.

    '동아시아 작은 나라의 작은 정당에서 극심한 당쟁(黨爭) 끝에 대표마저 국빈 환영에 내보내지 못했다'는 말이 나오게 됐으니, 이따위 행태가 '건강한 보수'가 할 일인가. 당을 위해 최선을 다해 관리해온 사람의 등뒤에서 비난하는 박정(薄情)함이 '따뜻한 보수'가 할 일인가.

  • ▲ 이혜훈 전 대표의 사퇴 이후 대표권한대행을 맡게 된 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는 모습. ⓒ뉴데일리 사진DB
    ▲ 이혜훈 전 대표의 사퇴 이후 대표권한대행을 맡게 된 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는 모습. ⓒ뉴데일리 사진DB

    정말로 모양새가 좋지 않은 것은 하태경 의원이며, 국민이 그 리더십을 판단할 대상은 유승민 의원일 것이다.

    8일 정세균 국회의장과 4개 교섭단체 원내대표 간의 회동에서 주호영 대표는 '마지막 인사'를 했다. 주호영 대표는 "원내대표로서 최선을 다할 때, 많이 도와줘서 고마웠다"며 "앞으로 어디에 있든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이에 정세균 의장은 "수고가 많았다"고 격려했으며, 다른 원내대표들도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눈물이 나려고 한다"는 반응도 있었다.

    법조인 출신인 주호영 대표가 그동안 수많은 '선관주의의무'가 이행되는 과정을 보기도 하고 겪기도 했겠지만, 이번에 대표권한대행으로서 겪었던 시간은 인생에서 그 어떤 '선량한 관리자 의무'보다 어려운 시기였을 것 같다. 반드시 국민이 제대로 판단하고 높이 평가하는 시점이 올 것이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