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정치·경제 종속(從屬)의 전주곡?
  • 올해 이 나라 경제성장 목표 3% 달성이 무난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단다.

    이유야 어떻든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동네 시장의 형편과 많은 국민들 주머니 사정은 크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른바 ‘서민들의 체감 경기’는 거의 바닥 수준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엊그제 ‘한중 관계 개선 관련 양국간 협의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 나라에 양키나라 군대의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그간 뛔국이 보이지 않는 손을 동원하여 경제 보복을 해 온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번 협의 결과로 ‘관광’을 비롯한 여러 경제 부문의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고 한다. 뛔국 관련 주식들의 가격이 일제히 대폭 상승하고 있다는 기사도 눈에 띈다.

    이제 ‘촛불 정부’의 화려한(?) 경제 성적표가 나오려나 보다. ‘적폐(積弊) 청산’의 어마어마한 중간 실적표에 이어서...

    그간 ‘정치 보복’이 아니라고 누누이 강조해 왔지만, 국민들 사이에서는 서서히 그 본질에 대한 의심이 쌓여가고 있다는 지적도 들린다. 또한 그 ‘적폐 청산’이란 게 ‘적폐적’(赤弊的)/‘촛불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걸 꽤 많은 국민들이 알아차리고 피로감과 염증을 느끼고 있다는 말도 돈다.

    더군다나, 그 무슨 ‘탈원전’을 비롯해서 ‘부동산 대책’이며, ‘최저 임금’이며, ‘방송 장악’이며, 특히 ‘일자리 늘리기’ 등등 각종 헛발질이 계속되면서 이른바 ‘지지율’이란 게 그저 여론조사 결과인 숫자에 불과하다는 비아냥도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이쯤 되면, 그 ‘적폐 청산’이란 걸 계속하기 위해서라도 국민들의 마음을 잡아둘 건덕지가 절실했을 거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도 있다. 혹시 그래서 꺼내든 카드가 위의 ‘양국간 협의 결과’라면 너무 허무맹랑하다고 하려나?

    뛔국 관광객들이 명동의 길거리나 삼계탕집 앞에서 북적거리는 모습이야말로 체감 경기 활성화의 신호처럼 국민들에게 다가갈 텐데...

    물론, 닳고 닳은 뛔국 입장에서야 이런저런 사정을 그저 지나칠리 없었을 것이다. 이 나라 참외밭에 양키나라 군대가 ‘사드’를 배치한다고 했을 때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던 기세를 몰아서, 뜻한바 ‘전략적 안보 이익’을 한꺼번에 쓸어 담을 수 있었다고 쾌재를 불렀을지 모른다.

    이번 ‘양국간 협의 결과’의 핵심인 ①‘사드’ 추가 배치 중단 ②미국 MD(미사일방어)체계 불참 ③한·미·일 군사협력의 군사동맹 발전 불가 등 이른바 ‘3불(不)’ 또는 ‘3NO’가 이 나라의 “약속”이 됐던 “입장 표명”이 됐던, 뛔국에게는 ‘늘 상 불편한 한미동맹’의 틈을 상당 부분 비집는 성과로 남게 될 것이라고 여기저기서 수군대고 있단다.

    양키나라 국무부 대변인이 “한·중이 더욱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된 것을 환영한다”고 언론에 브리핑을 했다지만, 왠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거시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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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한, 주목할 것은 ‘양국간 협의 결과’ 내용 가운데 “양측은 한반도 비핵화 실현,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재차 확인하였으며, 모든 외교적 수단을 통해 북핵 문제 해결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기로 재천명하였다...”는 대목이라고 한다.

    이는 위의 ‘3불’과 결합하면, 뛔국이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카드인 ‘쌍중단’[雙中斷:한미연합훈련 중단+북녘의 핵·미사일 개발 활동 중단]과 ‘쌍궤’[雙軌: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북·미 평화협정체제 협상]를 더욱 키우면서 거세게 압박할 여지를 남겼다는 평가도 대두되고 있다고.

    뛔국은 이런 이익을 챙기는 동시에, 어떤 경우든 마음만 먹으면 이 나라에 경제 보복을 할 수 있고, 또한 통할 수 있다는 전례(前例)를 얻었다. ‘또랑 치고 가재 잡는다’는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다.

    그 보복을 풀기 위해서 이 나라가 자칫 간(肝)이며 쓸개며 다 내놓다시피 해야 할 판이 되어버리지는 않았는지... 이 나라 여러 경제부문의 환호가 역설적으로 경제 복·종속(服·從屬)의 전주곡(前奏曲)으로 들리는 이유이다.

    ‘한중 관계 개선’이나 ‘전략적 동반자’를 읊어대기 전에, 67년 전 이즈음 이 나라 국군이 평양을탈환하던 날[1950년 10월 19일] 20만이 넘는 ‘중국인민해방군’은 압록강을 건넜다는 사실도 한번쯤은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누군가는 이런 말도 남겼다고 한다.

    “오늘 중공(中共)과 유화(宥和)하면 내일 더 많은 피를 흘린다”

    또 그리고...

    “새로운 정세 하에서 중국은 조선과 함께 노력해 두 당, 두 나라 관계가 지속적으로 건전하고 안정적으로 발전하도록 추동함으로써...”

    뛔국의 ‘시[習] 따거’가 ‘한중 관계 개선 관련 양국간 합의문’이 발표된 바로 다음날 북녘의 세습독재자에게 보낸 전문(電文)의 일부분이란다.


    <이  죽> 李 竹 / 時事論評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