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삼권분립 운운 비루하다", 바른정당 "자가당착"
  • 김이수 전 헌법재판소장후보자가 국회에서 인준이 부결돼 더 이상 5부 요인이 아닌데도,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그를 청와대로 초청해 인사를 받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김이수 전 헌법재판소장후보자가 국회에서 인준이 부결돼 더 이상 5부 요인이 아닌데도,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그를 청와대로 초청해 인사를 받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국회에서 김이수 전 헌법재판소장후보자의 업무보고를 거부한 것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이 이를 꾸짖고 임의로 '수모'라 규정하며 대리 사과하기까지 하는 등 국회 무시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지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4일 페이스북·트위터 등 SNS를 통해 일제히 "김이수 헌법재판관이 헌재소장권한대행인 것이며, 대통령과 국회는 인정한다 안한다 라고 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며 "헌재소장권한대행을 부정하고 업무보고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은 국회 스스로 만든 국법질서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강변했다.

    나아가 "국회의원들은 삼권분립을 존중해달라"며 "수모를 당한 김이수 권한대행에게 대통령으로서 정중하게 사과드린다"고 덧붙였다.

    이와 같은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 표명은 그 자체로 삼권분립 위반이고, 내용도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대통령과 국회는 (헌재소장권한대행을) 인정한다 안한다 라고 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했는데, 먼저 "인정한다"고 나서서 논란을 촉발시킨 것은 다름아닌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 직후 청와대는 박수현 대변인 명의의 브리핑에서 "청와대는 김이수 헌재소장대행체제를 유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대통령이 인정한다 안한다 라고 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는 스스로의 말과는 다른 것이다.

    뒤늦게나마 잘못을 인정한 것이라면 그나마 바람직하지만, 장문의 입장 표명에서 정작 문재인 대통령 자신이 먼저 권한 없는 행위를 했던 것에 대한 반성은 쏙 빠져 있다.

    뒤늦게 13일자 브리핑에서 "김이수 헌재소장 인준안이 부결된 이후의 대행 체제 지속 여부는 청와대와 무관한 것"이라고 수습에 나섰지만, 이미 엎지른 말을 이 정도로 주워담을 수는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먼저 국회에 정중히 사과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대통령은 헌재소장권한대행을 인정한다 안한다 라고 할 수 있는 권한이 없는 것이 맞지만, 국회는 국민의 대의대표들로 구성된 민주적 정당성의 총체로서 당연히 인정한다 안한다 라고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헌법 제111조 4항은 헌재소장의 임명에 국회의 동의를 얻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사법부는 미국·일본과는 달리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는 절차가 전무하기 때문에 민주적 정당성이 결여돼 있다. 때문에 사법부의 최고 지위인 대법원장과 대법관, 헌재소장만큼은 간접적으로나마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절차가 국회 인준 과정이다.

    김이수 전 후보자에 대해서는 국회에서 인준안이 부결되기 전까지는 아무도 권한대행하는 것을 문제삼지 않았다. 국회의 인준이 부결돼 민주적 정당성이 상실됐기에 비로소 문제가 된 것이다.

    국민의 대의대표들이 '소장 권한을 행사하기에 부적격한 자'라고 판단을 내렸는데, 계속 권한대행의 자리에 앉아 기약없이 그 권한을 행사하겠다는 것이야말로 "국법질서"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정세균 국회의장이 지난 9월 11일 국회 본회의에서 김이수 전 헌재소장후보자에 대한 인준 부결 투표 내용이 담긴 결과문을 낭독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정세균 국회의장이 지난 9월 11일 국회 본회의에서 김이수 전 헌재소장후보자에 대한 인준 부결 투표 내용이 담긴 결과문을 낭독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마치 국무총리서리가 국회에서 인준이 부결됐는데도 계속 서리로서 총리의 직무를 수행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초헌법적·독재적 발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민주정부'라 칭하는 김대중정부 시절이었던 1998년 3월 2일, 김종필 총리서리의 인준안이 국회에서 부결될 조짐을 보이자, 집권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와 자민련 의원들은 투표함을 몸싸움으로 빼앗는 등 본회의 파행을 무릅쓰면서까지 개표를 결사 저지했다. 인준이 부결되는 순간 대행이든 서리든 계속해서 맡을 수 없다는 것은 헌정 상의 상식이기 때문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후보자 지위에서 부결된 지위를 권한대행으로서 계속 앉아 있겠다는 발상이 기가 막히다"며 "박근혜정권 때에 아마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현 여당 의원들은 입에 거품을 물면서 규탄했을 것"이라고 조소했다.

    따라서 김이수 전 후보자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지 않겠다고 나선 것은 개개인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으로서 민의를 대변하는 최소한의 권리행사다.

    이에 대해 "국법질서에 맞지 않다"고 없는 혐의를 만들어 뒤집어씌우면서 꾸짖는 것 또한 대통령으로서 감히 국회에 대해서 할 수 없는 언사로 이미 삼권분립을 능욕한 것이라는 비판이다.

    '수모'가 아니라 마땅히 당할 일을 당한 것인데 마음대로 '수모'라 규정하며 당사자인 국회의원은 생각도 없는데 대통령이 대신 나서서 사과하는 '대리사과'도 우스꽝스럽거니와, 삼권분립을 위배한 당사자로서 "삼권분립을 존중하라"고 국회에 훈계하는 태도도 가관이라는 지적이다.

    정치권은 이와 같은 문재인 대통령의 태도를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다.

    자유한국당 전희경 대변인은 15일 논평을 통해 "김이수 재판관은 국회의 임명동의안 부결로 재판관 자격에까지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라며 "그럼에도 권한대행을 명분으로 국감장에 헌재의 수장이라며 나타난 것은 후안무치한 행동"이라고 경악했다.

    나아가 "문재인 대통령은 코드가 일치하는 김이수를 소장으로 만들려다가 심각한 하자로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자 권한대행이라는 꼼수를 써서 헌재를 멋대로 손아귀에 넣고 흔들려는 것"이라며 "그럼에도 '권한이 없다'느니 삼권분립 운운하는 것은 비루한 말일 뿐"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국민의당 이행자 대변인은 "국회가 부결한 뜻을 존중하고 신임 헌재소장 후보자를 지명하겠다고 밝히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며 "대통령이 김이수 대행 체제를 계속 인정하겠다고 하는 게 문제가 된 것"이라고 짚었다.

    아울러 "삼권분립을 지켜야 할 분은 대통령 본인"이라며 "대통령으로서 헌법기관을 구성해야 할 책무를 신속히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바른정당 전지명 대변인도 "헌법의 삼권분립 정신은 국회의 의사를 존중하라는 게 기본 상식"이라며 "대행 체제가 문제없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글은 국회의 임명동의권을 무력화시킨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삼권분립, 국법질서에 맞지 않는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글은 자가당착"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의 권한대행 체제를 하루 속히 중단하고 새 후보자를 지명하는 헌법상 의무를 지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