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용훈 카이스트 교수 "탈원전 단체 '입맛대로 통계'... 국민 호도하는 것"
  •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 ⓒ뉴데일리 박진형 기자
    ▲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 ⓒ뉴데일리 박진형 기자

     

    “국민들이 편향된 정보로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요? 요행을 바라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탈원전 정책에 대한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와 인터뷰 일정을 잡은 것은 지난 13일 대전시청에서 열린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관련 토론회’가 끝난 직후였다. 10년에 한 번 원전 대형사고가 터질 수도 있다는 정다울 그린피스 캠페이너의 주장과는 달리 “최악의 경우에도 우리 원전(原電)은 안전하다”는 정 교수의 진의를 파악하고 싶어서다.

    정용훈 교수는 당시 토론회에서 “현재까지 세계 원전이 1만7,000년의 누적 운전기간 중에 지진 충격으로 사고가 난 원전은 단 하나도 없었다”고 강조했지만, 장다울 캠페이너는 “물론 원전의 사고 확률은 낮겠지만 분명히 사고 확률이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위험을 생각해 봤을 때 체르노빌보다 그 피해가 클 수 있다”고 맞섰다. 원전의 경제성과 신재생에너지를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눈앞에 사막의 오아시스가 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빛의 굴절에 의한 착시현상인 신기루에 불과한 것처럼 지엽적인 사실보다는 진실을 캐고 싶다는 생각에 정 교수의 연구실을 찾았다. 안으로 들어가자 연구실 책상 위에 놓인 당시 대전시청 토론회 자료집이 눈에 띄었다. 여러 수치들이 적힌 A4용지가 함께 끼어 있었고 원전과 관련된 여러 메모들이 적혀 있었다. 원전 반대 측의 주장에 대해 할 말이 많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던졌다.

    ―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관련 토론회’에 참석한 소감이 어떤가

    “객관적 통계와 수치에 대해서 각자가 달리 해석할 수 있지만, 자신의 입맛대로 취사선택 하는 것은 국민들을 혼동시키는 거라고 생각한다. 객관적인 정보를 종합적으로 담백하게 제공하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프레임을 제공하는 게 좋은지 헛갈릴 지경에 이르렀다.”

    정 교수가 말한 ‘프레임’이라는 것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 해주는 근거만을 선택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국민들의 감성을 자극해 자신의 주장대로 여론을 이끄는 사람들을 보면서 느낀 한탄으로 들렸다. 정 교수는 웃으면서 말했지만, 오히려 허탈해보이기까지 했다.

    ― 원전 반대 측이 입맛대로 취사선택한 통계가 무엇인가

    “신재생에너지 대세론이 그렇다. 세계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이 24.5%라는 근거를 흔히 드는데... 하지만 이 수치는 수력 발전까지 포함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수력이 아니라 태양광과 풍력 발전 비중을 늘리자는 건데 모든 걸 짬뽕시켜 통계를 인용한다. 태양광과 풍력만 계산하면 대략 5.5%에 불과하다.”

    ― 원전 반대 측은 태양광과 풍력 산업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재생에너지 산업 규모를 나타낼 때는 덩치가 커 보이기 위해 수력, 바이오, 태양광, 풍력 등을 모두 포함한 통계치를 소개한다. 그런데 성장률을 보여줄 때는 다른 방법을 쓴다. 태양광, 풍력 등 개별로 집계한 통계를 자꾸 말한다. 왜 그런지 아는가? 비유를 하나 들겠다.

    어린 아이는 매년 몰라보게 키가 쑥쑥 큰다. 성인은 20대 중반을 넘어서면 더 이상 자라기가 힘들다. 같은 이치로 이제 막 걸음마를 뗀 태양광·풍력 산업이 성인인 ‘원자력 산업’보다 성장 속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아아들이 워낙 빨리 자라서 한 철 지나면 옷을 못 입힌다고 하지 않나?”

    ― 태양광과 풍력 산업의 성장 속도가 빠르다는 건 사실인가

    “맞다. 하지만 원자력도 고리 1호기가 하나 만 있을 때 추가로 하나를 더 짓게 되면 100%가 증가하는 것이다. 현재 태양광 풍력이 원자력 초기 수준임을 감안할 때 증가율을 가지고 탈원전 정책의 주요 논거로 이야기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

    ― 고리·한울·한빛 원전이 밀집되어 있어서 위험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원전 한 호기의 사고가 주변의 다른 원전 사고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교통사고처럼 삼중, 사중 추돌사고로 번지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체르노빌 4호기에서 사고가 발생했지만 주변 1·2·3호기는 괜찮았다. 미국 TMI 2호기에서도 사고가 났지만 1호기는 안전했다. 1개든 5개든 10개든 방비가 잘 되어 있는 원전은 안전하고 그렇지 않은 곳은 취약한 것이다.

    오히려 주위에 원전이 여러 개가 있으면 사고를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향상되기도 한다. 위험 상황에서 안전 설비를 서로 조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동형 발전차 등이 있다.”

    ― 전체 지진의 90% 이상이 활성단층에서 일어난다. 탈원전 단체 등에서 이런 단층 60여 개가 부산·울산·경주 등에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모두 활성단층인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양산단층대와 일광단층대, 울산단층대의 일부구간이 제4기 단층(활성단층)으로 해석되지만 이들 전체가 각각 활성단층이라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 이게 객관적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 올 수 있는 최대 규모의 지진이 6.5라고 한다. 신고리 5·6호기의 경우 7.0 규모의 지진이 와도 견딜 수 있게 내진설계가 돼 있다. 그리고 그 기준이라는 건 건물이 무너진다는 얘기가 아니라 원전을 더 이상 운전하지 말고 안전 정지하라는 수준을 의미한다. 전문용어로 ‘안전정지지진’라고 부른다.”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에 따르면 우리나라 모든 원전은 규모 6.5~7.0까지 지진이 발생하더라도 견딜 수 있는 내진설계가 돼 있다.

    ― 만약 내진설계를 넘어서는 지진이 온다면?

    “2011년 후쿠시마 원전과 오나가와 원전은 내진설계를 넘어선 9.0 지진이 왔을 때 큰 문제없이 정지하고 원자로를 냉각했다. 다만 냉각을 하려면 전기가 필요한데 후쿠시마 원전의 경우 상대적으로 낮은 방벽이 해일을 막지 못하면서 발전소를 덮쳤다. 전기가 필요한 냉각 시설을 작동시키지 못하는 원인이 된 것이다. 결국 원자로 내부가 크게 손상을 입고 수소가 외부로 방출되면서 폭발했다.

    체르노빌 원전은 사고 이전에 격납건물 부재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고 후쿠시마 원전의 경우 지진 해일에 대한 방비가 부족하다는 경고가 있었지만 모두 적절하게 대비하지 않아 발생한 사고다. 원전이 위험해서가 아니라 ‘안전장비’를 착용하지 않아서 생긴 일들이다.”

    ― 예측 가능한 범위에서만 사고가 나는 건 아닐텐데 무슨 자신감으로 원전은 “안전하다”라고 말하는 것인가

    “어떤 사고가 발생할지는 모르지만 원자로에 물만 넣을 수 있으면 안전을 지킬 수 있다. 물을 넣는 것이 거듭 실패할 경우 최악의 사태는 노심이 녹는 것이다. 그런데 노심이 녹아도 격납건물이 튼튼하다면 방사능물질 누출을 막을 수 있다. 넘어져도 보호대가 튼튼하면 상처는 입지 않는 것과 같다.

    현재는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안전성과 경제성을 모두 증진시킨 3세대 원전을 개발했다. 1세대 원전에 비해 3세대 원전은 안전성이 10배 이상 사고 확률을 줄였다. 원자력 에너지 활용 기술은 1950~60년대 기술에 그대로 정체된 것이 아니다.”

    정 교수는 인터뷰 중간 중간 답변을 하다가 컴퓨터를 사용하거나 자료를 뒤적거렸다. 기억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정 교수는 동료 교수의 말을 인용하면서 “공학 분야와 같은 경험하지 않은 분야에 대해서는 순전히 ‘감’으로 접근하기보다 계산을 통해 위험성을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관은 위험성을 크게 부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종종 흡연보다 비행기를 타는 것을 더 위험하게 받아들인다. 비행기 추락사고는 끔찍하고 충격적이기 때문에 강한 인상을 남기지만 폐암에 걸려 죽는 사람은 신문이나 방송에서 크게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눈물샘을 자극하는 원전 사고를 다룬 영화 ‘판도라’가  관객들의 두뇌에 어떤 모양으로 각인됐을까. 탈원전 정책이 시민들의 지지를 받는 이유와 연관 지어 잠시 생각에 잠겼다.

    ― 우리나라의 원자력 기술은 ‘선진국’ 수준이 아니라 ‘선도국’으로 도약하고 있다. 하지만 탈원전 정책이 유지된다면, 원전 산업에 어떤 영향이 있나

    “문재인 정권 안에 원자력 산업이 붕괴될 것으로 예측된다. 먼저 원전 설비 제품을 제조하는 중소기업들부터 직격탄을 맞게 된다. 2023년부터 원전이 하나 둘씩 폐쇄되는 상황에 맞춰 중소기업들이 사전에 대처할 것이다. 절벽이 보이면 돌아설 것이다. 연구 개발이나 부품 공급을 더 이상 안 하게 되는 것이다. 제조 기반과 공급망이 무너지게 된다. 결국 운전 중인 원전의 안전에도 빨간불이 들어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운전허가 기간이 만료되는 원전은 △2022년 월성 1호기 △2023년은 고리 2호기 △2024년은 고리 3호기 △2025년은 고리 4호기, 한빛 1호기 △2026년은 월성 2호기, 한빛 2호기 △2027년은 월성 3호기, 한울 1호기 △2028년은 한울 2호기 △2029년은 월성 4호기 등이다. 2022년부터 매년 1~2개의 원전이 운전기간이 끝나 폐쇄가 되는 셈이다.

    - 2022~25년이면 재생에너지가 원전보다 경제성이 더 뛰어난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과 영국의 사례다. 단순히 해외 사례에 비추어 우리나라 상황을 전망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영국은 근해도 풍력이 좋다. 풍력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하고 비교가 되지 않는다. 사우디 기름이 싸다고 우리가 싼 것 아닌 것과 같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전원별 발전원가는 2015년 기준으로 △원자력은 49.58원 △석탄은 60.13원 △가스(LNG)는 147.41원 △신재생/기타는 221.28원이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40분 넘게 흘렀다. 체감 상 2시간 넘게 지난 것 같았다. ‘여담’(餘談)을 늘어놓는 가벼운 자리가 아니기 때문일까. 복잡하고 난해한 ‘원전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가 숨이 턱턱 막히는 지점도 여러 번 찾아왔다. 원전의 안전성, 경제성 등을 따져야 하는 신고리 5·6호기 원전 중단 여부를 결정하는 시민참여단도 같은 마음일까.

    ―시민참여단 500명이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한 달 동안 공부해서 원전 중단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단기간에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보는가?

    “숙의과정에서 자료집을 해석해 줄 사람이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일반 시민들은 배경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원전 찬성과 반대 측이 제시하는 통계에 속을 수 있다. 그래서 양쪽 자료를 모두 소화시켜서 국민들에게 알려주는 해설사가 필요해 보인다. 대신 해설사는 주장이 아니라 ‘해설만’ 해야 한다.

    다수의 안이 합리적으로 결론나려면 판단 자료가 정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음식점 메뉴판을 전문가가 정확히 써줘야 한다. 그리고 메뉴를 국민이 고르는 것이다. 그런데 한 손님이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서 5,000원짜리 자장면을 시켰는데 계산대에서 갑자기 만원을 내라고 하게 되면 빚을 지게 된다. 메뉴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는 종업원(해설사)이 필요하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신재생도 여력이 되는 한 늘리는 것이 맞다. 원래 계획도 2030년 14%였다. 거기서 6% 늘리는 것이다. 그런데, 원자력과 석탄을 모두 급격히 줄이면서 LNG가 11%에서 35% 늘었다는 게 문제다. 비싼 수입 LNG를 당초 계획보다 3배로 늘리는 것은 우리 환경에 맞지 않다고 본다. (정부는 2030년까지 원전비중을 현재 30%에서 18%로 낮추고 액화천연가스 비중을 20%에서 37%, 신재생을 5%에서 20%로 올리기로 결정했다) 세계 일류기술인 원자력을 잃게 된다는 것도 부담이 된다. 연간 추가수입 해야 할 LNG 비용 10조 원가량을 복지에 쓰이는 것이 풍요로운 우리 미래를 위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