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정권이 NLL을 북한에 양보했던 이유는?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지난 10월 8일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이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폭로한 ‘노무현 NLL포기설’이 대선 정국을 달구고 있다. 정 의원 주장의 핵심은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에게 서해 NLL을 주장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즉각 논란을 불러왔다.

    노무현 - 김정일간에 비밀 회담 기록이 있느냐 없느냐의 논쟁에서 문재인 당시 비서실장의 대화록 폐기설로 포인트가 옮겨갔고, 결국 지난 10월 29일 노무현-김정일간의 NLL 관련 대화록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증언이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의 입에서 나왔다.

    이에 새누리당 의원들은 대화록의 공개와 열람을 강력히 요구한 반면, 민주통합당 의원들은 무책임한 정치공세라며 대화록 공개를 강력히 반대했다. 원 원장은 대화록 공개가 남북관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공개는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햇볕정책에 무력화된 NLL


    북한의 태도는 더욱 미묘하다. 11월 1일 조선중앙통신은 한미 양국이 제44차 연례안보협의회(SCM)를 열고 서북도서 및 북방한계선(NLL) 일대에서 연합연습 및 훈련을 지속 증진시켜나갈 필요가 있다고 재확인한 것을 “위험천만한 흉계”라고 비난하면서 “북방한계선은 미제침략군이 정전협정과 배치되게 우리의 신성한 영해에 멋대로 그어놓은 불법무법의 유령선”이라고 주장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 방송이 “북방한계선의 불법성에 대해서는 미국과 남한 당국이 이미 인정한 바 있다”고 주장했던 것.

    이러한 북한의 주장이 91년 남북기본합의서 상의 ‘NLL 추후 협상 계속’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노무현-김정일간에 있었던 대화를 지적하는 것인지 명확하지는 않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북한이 현행 NLL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는 분명하다는 것이다.

    사실 북한이 91년 남북기본합의서의 내용을 가지고 현행 NLL을 불법이라고 주장하는 것에는 아무런 정당성이 없다. 91년 12월 13일 서울에서 체결된 남북 기본합의서와 1992년 9월 17일 평양에서 체결된 그 부속합의서에는 남북의 관할 및 해상 경계선에 관해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남과 북의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 해상불가침 구역은 해상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온 구역으로 한다.’
    (부속합의서 10조)

    종북과 좌파 진영에서는 이 조항의 전반부 ‘남과 북의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만을 인용해 현재의 NLL은 잠정적이며 그렇기에 북한이 협의를 요구해 오면 남한은 성실히 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남북합의서 후반부의 조항은 협의와 관계없이 NLL이 확정되지 않을 경우, 기존의 NLL을 인정하는 조건을 명시하고 있다. 이를 국제정치 용어로는 ‘현상유지’(Status Quo)라고 한다. 따라서 ‘계속 협의’라는 부분은 외교적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이 어떤 제안을 해오더라도 우리는 그 제안이 현상유지에 반한다면 언제든 ‘수용불가’를 주장하면 되는 문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NLL에 대한 북한의 침범과 도발은 바로 우리 군의 무력사용의 근거가 된다. 하지만 이러한 원칙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한반도 평화정책이라는 또 다른 아젠다에 의해 사실상 효력을 볼 수 없었다.

    그 결과 1999년 1차 서해교전에서는 우리가 승리했지만 남북정상회담 이후인 2002년 2차교전에서는 김대중 정부의 잘못된 교전 수칙에 의해 우리 해군 장병 6명이 순직하는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2차 서해교전 이후 김대중 정부는 NLL에 대해 단호한 입장으로 변하게 된다는 점이다. 2002년 7월 민주당은 노무현 대통령 후보와 정세현 장관 등이 참석한 회의에서 ‘북의 NLL 도발을 일체 허용하지 않는다’는 내용과 함께 교전수칙 변경을 정부에 건의했다.

    문제는 노무현 대통령 후보에게 있었다. 그의 대선 공약에 NLL 공동어로화 추진이 들어가 있었던 것. 당시 이회창 후보는 이에 반대했다.


    노 정권, 북핵실험 이후 NLL에 태도 변화


    노무현 후보는 북한을 주적에서 삭제하는 데도 반대를 했고 NLL을 대체할 새로운 해상분계선 설정에도 역시 반대했다. 이러한 점으로 보자면 노무현 대통령이 처음부터 NLL을 포기하려 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이러한 NLL에 대한 입장은 2006년 들어서면서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다. 노 전 대통령은 NLL 문제에 대해 군이 ‘북한과 논의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는 입장을 고수하자 2006년 6월 16일 충남 계룡대에서 NLL 문제와 한미 관계 등을 주제로 군 수뇌부와 육해공군 장성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했다.

    이 자리에서 노 전 대통령은 “평화는 신뢰가 중요하고 전략적 유연성이 있어야 하며 이런 차원에서 NLL을 (북한과) 협상의 대상으로 할 수 있다”며 “국방장관은 남북회담에서 (NLL 협상이) 안 됩니다 라고 했는데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금기는 없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예비역 장성은 “당시 군 통수권자가 군이나 국민의 정서와는 동떨어진 얘기를 해 많은 장성이 놀랐었다”고 언론에 익명으로 밝히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이러한 입장의 변화의 이유를 밝히기에는 한계가 있다. 현재 대통령관련 기록물의 열람이 제한된 법 때문이다. 어떤 기록물은 무려 30년 동안 비밀이 유지된다.

    다만 이 시기가 북한의 핵실험을 4개월 정도 앞두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북핵문제로 인해 6자회담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있었다는 점으로부터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동북아 균형자’라는 아젠다 속에서 북한과 모종의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을 가능성은 존재한다.

    다시 말해 북핵문제와 NLL문제를 서로 연계해서 남한이 북핵문제 해결에 어떤 계기를 만들고 이를 남북정상회담으로 연결하려 하지 않았겠느냐 하는 분석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추론은 2006년 10월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 후 노무현 정권의 NLL문제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자세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다. 2007년 8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은 국회에서 “NLL은 영토 개념이 아니라 군사적 충돌을 막는 안보적 개념에서 설정된 것”이라고 했다가 김장수 전 국방 장관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당시 김장수 장관은 이재정 장관에게 “통일부가 왜 자꾸 NLL 문제를 건드리느냐. 쉽게 얘기할 사안이 아니니 앞으로 NLL 발언을 삼가 달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책상을 친 뒤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도 했다는 이야기는 당시 군과 정가에 화제가 됐었다.

    결국 2007년 10월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김정일과 남북 정상회담을 한 지 1주일쯤 뒤,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 정당 대표 초청 오찬 간담회 및 출입 기자 간담회에서 “그 선(NLL)이 처음에는 우리 군대의 작전 금지선이었다. 이것을 오늘에 와서 ‘영토선’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렇게 되면 국민을 오도하는 것”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노 전 대통령은 “휴전선은 쌍방이 합의한 선인데, 이것(NLL)은 쌍방이 합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그은 선”이라고도 했다. NLL이 정식 영토선이 아니라는 노 대통령의 언급은 이때 처음 등장했다.


    노무현-김정일 NLL에 무슨 이야기 오갔나


    당시 남북정상회담의 총체적 실무를 담당하고 있던 문재인 비서실장은 국회에서 “NLL이 협상의 의제가 될 수도 있다”는 발언으로 한나라당 의원들로부터 질타를 받기도 했다. 가장 중요한 점은 노무현-김정일간의 정상회담 이후 추진된 국방장관급 회담이다. 김장수 전 장관은 10월 9일 TV조선에 출연해 이렇게 이야기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에게 이러이러한 말을 했었다라는 인용은 없었어요. 다만 노무현 대통령이 NLL은 문제가 있는 선이고 재검토를 해야 한다고 하는데 왜 김장수 장관은 (노무현 대통령과는) 반대로 나가고 해서 회담을 진척시키지 못 하느냐고 공박을 하긴 했죠.

    그러면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보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남측 기자들에게 자신(인민무력부장)이 직접 NLL의 부당성을 설명하면 이해할 것이니 (남측) 기자를 모아달라고 했지만 제가 거절했죠. 내가 만약 북한 기자들에게 NLL문제를 설명할 테니 (북측) 기자들을 모아달라고 하면 당신이 응하겠냐고 하면서 거절했습니다.”

    김장수 전 장관의 증언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김정일간에 NLL 문제에 대한 재논의 합의가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NLL포기설’은 이런 상황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왜 노무현 정권에서 집권 전 공약으로 확인했던 ‘NLL 변경 불가’에 대한 입장을 바꿨느냐 하는 점이다. 이 점이 최대의 미스테리다.

    실마리는 있다. 바로 김장수 전 장관이 밝힌 북한의 공동어로수역 제안이 바로 그것이다. 김 전 장관은 1일 "북한은 NLL과 북이 주장하는 해상경계선 사이를 몽땅 공동어로수역을 설정하자"는 입장이었다고 밝혔다.

    북이 주장하는 해상경계선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노무현 정부가 공식으로 국민들에게 밝힌 바 없다. 다만 문재인 후보가 주장하는 것처럼 ‘NLL을 기점으로 하는 남북등거리 수역’이 아니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와 관련해 언론에 보도되는 북한측의 공동어로수역은 현재의 NLL을 기점으로 12해리 남쪽, 또는 백령도와 연평도, 격렬비열도를 훨씬 남하한 지역인 것으로 알려진다.

    이러한 점은 매우 중요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 당시 북한의 민간 어로는 이미 경제난으로 붕괴된 상태라는 점이다. 그런 북한이 무슨 이유로 그 넓은 공동어로수역을 원했던 것일까. 여기에는 두 가지 추정이 가능하다.

    하나는 이러한 공동수역을 통해 한미 연합 해상훈련을 저지하겠다는 점과 동시에 중국에 어업권을 팔아서 외화를 벌 생각이라는 점이다. 이 가운데 중국에 대한 어업권 양도는 현재 진행형이며 보다 심층적인 내막이 있다.


    NLL 협상에 중국의 입김은 없었나


    노무현 대통령이 2006년 6월 ‘NLL 재협상 가능’이라는 입장을 표방하기 2개월 전, 한국은 중국과 군사협력에 관한 중요한 회담을 가졌다.

    즉 2006년 3월경 윤광웅 국방부 장관의 중국 방문이 있었고 이 기간에 한국과 중국은 “서해상 안전을 위한 양국 해·공군간 상호협력 체제를 구축한다는 데 공감했다”는 내용과 “이를 위해 함대사 및 방공체계간 직통 통신망(핫라인)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는 발표가 있었다.

    여기에 서해 북방한계선(NLL)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내용은 중국의 불법조어에 관한 정보교환이었지만 그 내막은 좀 더 복잡하다. 중국과 NLL 사이에는 한중어업협정의 골치 아픈 문제가 얽혀 있기 때문이었다.

    98년 11월 우리 정부가 한중어업협정 가서명 당시 안보를 이유로 북방한계선(NLL)을 전후한 서해특정금지수역에서의 중국 어선 조업을 금지하자 중국은 99년 3월 양쯔강 하구에서 우리 어선들이 1년 내내 조업할 수 없도록 국내법을 일방적으로 개정, 이 문제를 둘러싸고 협상이 전체적으로 난항을 겪어 왔던 것.

    이러한 배경에서 북한이 2002년 서해도발을 했을 때 요미우리(讀賣), 아사히(朝日),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 등 주요 일본 신문들은 교전의 배경으로 북한의 ‘어업권 확보’를 지목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당시 북한의 어업은 이미 붕괴된 상태였고 NLL에 남북간 공동어로수역이 등장하면 중국은 북한의 어업권을 사는 방향으로 한중어업협정의 난관을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NLL 대화록의 실체는


    아울러 당시 동북아균형론자를 주창했다가 내외의 비난에 시달리던 노무현 정부로서는 북핵문제 해결을 이 NLL 공동수역 문제로 돌파하고 그 여세로 남북정상회담과 1년여 남은 2007년 대선의 헤게모니를 확보하려는 전략을 내부적으로 상정했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하지만 정작 북한이 제시한 공동어로수역은 노무현 정권이 생각했던 그런 것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이었다.

    이제 진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정일과 나눈 NLL 대화 내용의 확인에 달려 있다. 이와 관련해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노무현 - 김정일 대화록’이 100페이지 이상에 달하며 북방한계선(NLL) 이야기가 여러 곳에 언급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원내대표는 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그동안 주워들은 얘기로는 남북 정상 간 담화록이 분명히 존재하고 그게 상당한 정도의 두께로 존재한다”면서 “100페이지 이상 되는 대화록에 서해 북방한계선(NLL) 관련 얘기가 여러 군데 나온다고 한다”고 말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제 NLL 대화록은 밝혀져야 한다. 그럼으로써 여·야 모두 진실의 순간과 마주해야 하고 어느 한쪽은 돌이키기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되리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