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은 웹하드 업계④ "검사에 5000만원" 양진호 로비는 빙산의 일각…'장부' 찾아야
  • ▲ 지난 10일 셜록-뉴스타파-프레시안 공동취재팀이 보도한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로비 정황 카카오톡. ⓒYTN 관련보도 VOD 캡쳐.
    ▲ 지난 10일 셜록-뉴스타파-프레시안 공동취재팀이 보도한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로비 정황 카카오톡. ⓒYTN 관련보도 VOD 캡쳐.
    문용식 나우콤 대표가 정치인으로 변신한 뒤 웹하드-P2P 업계(이하 웹하드 업계)는 변했다. 필자가 그 업계를 떠난 뒤 변희재 당시 미디어 워치 대표가 ‘콘텐츠공정유통협의회’를 ‘콘텐츠유통기업협회’로 바꾸고, 기존의 ‘기득권 웹하드 업체들’과 본격적인 싸움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일전에 했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그 시점부터 몇 년 동안 웹하드 업계를 가까이서 살펴봤다. 그는 몇 년 사이 많은 일이 있었다고 했다.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양진호 회장, 웹하드 업계의 ‘패자(霸者)’ 될 수 있었던 배경

    양진호 회장 건을 계속 파고 있는 독립매체 ‘셜록’과 이를 지원하는 ‘뉴스타파’, ‘프레시안’ 공동 취재팀은 지난 10일 “양진호 회장이 검찰에게 뇌물을 줬다는 정황을 포착했다”며 양 회장과 그의 지인이 나눈 카카오톡 대화 캡쳐 사진을 공개했다. 이 대화에서 양 회장은 성남지검 검사들에게 5000만 원을 줄 예정이라고 말했다. 양 회장은 대화에서 “아까운, 피 같은 돈이 그 XX 주둥이로 들어가다니”라고 말했다.

    공동취재팀은 “당시 양 회장은 별도의 저작권 위반으로 고발을 당한 상태였는데, 이 대화 이후 해당 건은 불기소 처분을 받았고, 위디스크 대표이사와 법인만 기소됐으며, 그마저도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고 설명했다. 공동취재팀은 또 "양 회장이 경찰과 검찰을 대상으로 웹하드 포인트를 제공하거나 기프트 카드를 준 의혹도 있다"고 덧붙였다.

    웹하드 업계를 조금이나마 아는 사람들은 보도를 본 뒤에 이렇게 반응했다. “겨우 몇 천만 원만 썼겠냐”고. 익명성이 보장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그의 손이 뻗지 않은 곳이 없다”는 주장도 나왔다. 아니라고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필자가 8년 전까지 봤던 웹하드 업주들은 별의별 로비를 했다. 지난 8년 사이 웹하드 업계의 ‘패자(霸者)’가 된 양 회장이, 사건이 터진 뒤에만 검찰과 경찰에 로비를 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DNA 필터링 업체 ‘클루넷’ 오너들의 은퇴

    8년 만에 양 회장이 웹하드 업계의 정점에 서게 된 계기는 역시 나우콤 오너 문용식 위원장의 정계 입문과 저작권 위반 콘텐츠를 걸러내는 ‘DNA 필터링’ 업체 ‘클루넷’ 오너들의 은퇴 때문이다. 웹하드 업주들은 그 전까지는 패가 갈리기는 했지만, 투자자들 때문이라도 서로 알고 지내며 극단적인 대립은 피했다. 웹하드 협회인 DCNA와 콘텐츠유통기업협회가 ‘질서 유지’를 했다. 그러다 양 회장의 ‘위디스크’와 ‘파일노리’를 능가하는 업체 오너들이 떠나자 그는 자연스레 업계 최고가 됐다.

    2012년 6월 아동청소년 보호법 개정안(이하 아청법) 시행을 전후로 웹하드 업계에 대한 단속이 강해진 것도 양 회장의 입지 강화에 일조했다. 이때 아청법은 실제 아동 포르노나 미성년자 포르노뿐만 아니라 교복을 입은 성인이 나오는 포르노, 성인용 애니매이션 또한 처벌 대상으로 삼아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대검찰청 집계에 따르면, 2011년 100여 건이던 아청법 위반 사건은 2012년에는 2224건으로 급증했다. 2012년 아청법 단속에 동원된 경찰만 1000여 명이었다. 당시 “아청법은 여성가족부가 주도한 법”이라는 소문이 많았지만, 당시 여성부 관계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한 것”이라고 털어놨다.

  • ▲ 2012년 개봉영화 '은교'의 한 장면. 교복을 입은 성인이 등장하는 음란물을 봐도 처벌한다는 아청법과 관련해 일부 네티즌은
    ▲ 2012년 개봉영화 '은교'의 한 장면. 교복을 입은 성인이 등장하는 음란물을 봐도 처벌한다는 아청법과 관련해 일부 네티즌은 "그럼 영화 '은교' 본 사람과 개봉관, 영화사도 처벌하라"며 반발했다. ⓒ

    아청법은 웹하드 업체뿐만 아니라 ‘토렌트’로도 잘 알려진 P2P 사용자들에게도 큰 타격을 줬다. 이 때문에 문을 닫는 업체들도 나왔다. 지인의 설명에 따르면, 실은 적지 않은 돈을 번 업주들은 아청법 시행에 단속까지 심해지자 업종 전환을 한다며 폐업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전성기 때는 200여 개가 넘던 웹하드 업체들이 2012년과 2013년을 거치면서 100개 미만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자연스레 웹하드 업체들이 대거 줄어들자 업계에서는 양 회장의 회사를 필두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시작됐다고 한다. 경쟁 업체를 고사시키려 경찰과 검찰에 익명 신고를 하는가 하면 당국의 단속이 느슨해지자 이용자를 더 끌어 모으려 리벤지 포르노를 비롯해 온갖 불법 콘텐츠를 팔기 시작했다고 한다. 업로드 또한 과거 ‘헤비 업로더’라 불리던 개인이 아니라 웹하드 업체들이 직접 별도 업체를 만들어 올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업계 패권 장악한 양 회장의 ‘보험’

    오랜만에 만난 지인은 양 회장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전했다. 필자가 8년 전에 봤던 웹하드 업주들은 정치인, 언론인, 법조인, 학자들과 빈번하게 만나면서 적지 않은 ‘후원’을 했다. 이들은 ‘후원’을 할 때 불법과 합법 사이를 교묘하게 피해 다녔다. 당시는 ‘김영란 법’이 시행되기 전이었음에도 ‘후원’을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최소한 법이 무섭다는 생각은 했다. 그러나 2013년 이후 업계에 남은 웹하드 업주들은 ‘막가파’ 식이었다고 한다.

    지인에 따르면 적지 않은 웹하드 업주들이 뇌물이나 향응 등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몰래 그 증거를 남겨 ‘보험’으로 삼았다고 한다. 로비 범위 또한 넓어졌다고 한다. 그 가운데 자금난에 시달리는 정치 지망생이나 전직 국회의원·지자체장 등이 좋은 사냥감이었다고 한다. 양 회장을 비롯해 끝까지 남은 웹하드 업주들은 특정 성향의 정치인들을 좋아했다고 한다. 학벌에 대한 자괴감과 기존 질서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들에게 의리가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좋은 대학을 나온, '사'자 경력이 있는 정치인들에게 유독 호감을 보였다고 한다.

    지인에 따르면 이렇게 웹하드 업주들과 연결된 사람들 가운데는 경찰과 검찰은 물론 행정 부처, 입법부 관계자도 있다고 한다. 그가 본 양 회장의 ‘장부’에는 이름만 대면 알만 한 전·현직 국회의원, 지자체장, 심지어 전직 장관들까지 있었다고 한다. 대부분 미디어에 등장할 때면 순수하고 깨끗하고 양심적인 발언과 태도로 국민들의 인기를 끌었던 사람들이었다. 지인은 말했다. “그 사람들이 후원을 받을 때 정말 양 회장의 정체를 몰랐겠느냐”고. 양 회장이 왜 자신들에게 거액을 주는지 이유를 몰랐겠느냐고.

    다른 곳에서는 지인의 말과 방향은 다르지만 양 회장과 정치인 간의 관계가 의심된다는 이야기를 보내왔다. 2017년 9월 7일 ‘프레시안’은 “몰카 성범죄 무한복제 막는 기술 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당시 기사 가운데 일부다.

  • ▲ 2017년 3월 양진호 회장의 한국미래기술을 찾아 '메소드 2'에 오른 제프 베조스 아마존 회장. 그가 '메소드 2'를 타는 데 일부 인사들이 개입했다는 소문이 있다. ⓒ美폭스뉴스 4 유튜브 화면캡쳐-제프 베조스 트위터.
    ▲ 2017년 3월 양진호 회장의 한국미래기술을 찾아 '메소드 2'에 오른 제프 베조스 아마존 회장. 그가 '메소드 2'를 타는 데 일부 인사들이 개입했다는 소문이 있다. ⓒ美폭스뉴스 4 유튜브 화면캡쳐-제프 베조스 트위터.

    프레시안: 지난 8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최근 국내 포털사이트에서 음란물을 실시간으로 감지해 자동으로 차단하는 인공지능(AI) 기술이 개발됐다는 기사를 본 적 있다”며 “98%의 적중률을 보였다는데 이러한 신기술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런 기술이 실제 존재하나.  

    업체 대표: 아마 DNA 필터링 기술을 언급한 듯하다. 대통령이 이를 안다는 사실에 나 역시도 놀랐다. 사실 업계 관계자가 아니면 알기 힘든 기술이다.

    ‘프레시안’이 취재한 곳은 DNA 필터링 기술을 가진 업체 ‘뮤레카’였다. 맞다, 양 회장의 ‘웹하드 카르텔’의 하나로 지목된 업체다. ‘뮤레카’는 2009년 초 DCNA가 '영제협' 등과 협약을 맺고 자정 노력을 하겠다며 내세운 DNA 필터링 업체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웹하드 업계 관계자 “양 회장, 로비 장부 모처에 보관 중”

    당시 ZD넷 등 IT전문매체를 통해 보도된 DNA 필터링 업체는 클루넷, 뮤레카, 위디랩, 엔써즈 등이었다. 이 가운데 클루넷은 ‘짱파일’과 ‘온디스크’가 우회상장을 위해 인수한 업체였고, 뮤레카는 ‘위디스크’와 ‘파일노리’ 측이 실제 소유주였다. 위디랩은 2009년 초 언론에 등장한 뒤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나마 실제 IT전문가가 창업한 업체 엔써즈는 동영상 전문검색 기술을 개발한 업체로 KT가 2011년 12월 지분 45%를 200억 원을 주고 인수했다가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해 2015년 6월 소니 그룹 계열사인 ‘그레이스 노트 코리아’에 팔았다.

    이처럼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까지 말했던 ‘뮤레카’의 DNA 필터링을 정말로 정치인들이 모를까. 지인은 이 기사를 본 뒤 묘한 말을 했다. “양 회장의 보복, 아니 반격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는 것이었다. 그의 이야기다.

    “양 회장은 머리가 상당히 좋고 집요한 사람이다. 게다가 당신도 알겠지만 웹하드 업주들은 돈 쓰는 일에 매우 인색한 편이다. 그런 그가 정치인과 검찰, 경찰, 법조계, 언론 등에 적지 않은 돈을 뿌리면서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그가 ‘장부’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위디스크·파일노리 임원들은 알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양 회장은 외부 사람과는 만날 때마다 모두 기록을 하고 함께 사진을 찍거나 증거를 남겼다고 한다. 그래서 ‘장부’가 한 두 권이 아니라고 한다. 

    지인은 “그게 만약 터지면 어찌될 것 같은가. 내용이 낱낱이 보도된다면, 모르기는 몰라도 죽을 사람이 한둘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 양 회장에 대해 도는 소문을 근거로 삼는다면, 지난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수백억 원을 로비에 사용했을 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지금 언론을 통해 나오는 문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한두 곳이 아닌 웹하드 업체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양 회장의 업체가 갑자기 사법당국의 수사를 받는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⑤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