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피로써 낙인과 오해와 불신을 씻어냈으니“역사가 우리를 명령하는 날 범같이 사자같이 달려 나가리”
  • 李 竹 / 時事論評家

      조국과 자유는 우리의 생명
      멸공의 깃발 아래 굳게 뭉쳤다.
      악마의 붉은 무리 무찌르고서 
      영광의 통일 전선 앞장을 서리

      굴복을 모르는 화랑의 후예
      국민의 힘이 되는 기무부대[특무부대/방첩부대/보안부대]
      미덥다 튼튼하다
      정의의 후예
      살아있는 성벽이다.
      기무부대!

      그들의 노래이다. 이제 공식(公式) 석상(席上)에서 불려 질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세인들에게서 그저 그렇게 잊혀질 수도 있다.

      이 나라 파란만장한 70년 역정의 한가운데에서 오직 ‘공산주의를 타도’(打共)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진력해 왔었다. 이 나라 안보의 최전선에서 은밀하게 움직이며 ‘국민’들의 신망(信望)을 받았었다. 
      물론 지금의 공영방송(公營放送)이 공정(公正)하다고 믿는 이 나라 일부 ‘백성’과 북녘 세습독재자가 3대에 걸쳐 이 나라에 놓아멕인 개돼지 ‘인민’들은 그들에게 늘 상 침을 뱉어왔지만...

      그 동안 극히 일부 요원들이 그 임무의 막중함을 잃고 본연의 위치를 일탈(逸脫)하여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극소수 정치 장교들이 시류에 편승하여, 그리고 자신들의 입신(立身)을 위해 조직을 험한 꼴로 내몰았던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자유 대한민국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심과 함께, ‘국민의 군대’에 대한 진정성을 굳건히 지켜왔다는 사실(史實)은 결코 부인할 수 없으며, 그런 평가가 주류를 이뤘다. 그들 대부분은 불철주야(不撤晝夜) 주어진 임무에만, 말 그대로 “우직하게” 매달려 왔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 이유로 대한민국의 주적(主敵), 즉 북녘의 세습독재정권으로부터 “가장 악질적인 대공·방첩기관”이라고 저주(咀呪)받아 왔다는 것이 정설(定說)이다. 

      특히, 그들이 “영원한 특무부대장”으로 가슴에 품어온 김창룡 장군이 주도한 ‘국민의 군대’에 대한 ‘숙군(肅軍) 작업’은 6·25전란에서 이 나라를 구할 수 있었던 매우 중요한 일대 사건으로 꼽힌다. 전쟁 전(前)에, 또한 와중에도 군에 침투했던 좌익 프락치들과 불순분자들을 솎아냄으로써, 이 나라 ‘국민의 군대’가 반공(反共)의 흔들리지 않는 보루가 되게끔 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저 북녘의 전쟁 범죄자는 김창룡 장군을 일컬어 “민족해방전쟁을 그르친 원흉(元兇)”으로 지목했다고 전해 내려온다. 그런데...

      이 나라가 타들어가는 비상하고 혼란한 시기에, 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을 단순히 검토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해체시켜버렸다. 당연히 마땅히 검토할 수 있는, 그리고 검토해야만 하는 군정보기관임에도 ‘반민주 적폐(積弊)’로 여론몰이를 해댔다. 정당한 정보수집까지도 ‘사찰’(査察)이라는 아주 비위에 거슬리는 용어를 써가며 부도덕의 상징으로 부각시켰다. 그리고 역사의 장에서 ‘파문’(破門)시켜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 나라 ‘국민’들은 저들이 그들을 해체시킨 진짜 이유가 “가장 악질적인 대공·방첩기관”이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이어서 급기야...  

      엊그제 그들의 수장(首長)을 지냈던 한 장수(將帥)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벌어졌다. 5년 전의 해난(海難) 사고를 범국민적인 힘을 모아 수습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군대’가 해야 할, 또한 지켜야 할 바를 위해 그들이 정보를 수집하고 조언한 것을 트집 잡았단다. 그리고 그 수장(首長)에게 치욕스런 범죄의 굴레를 씌우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공개된 유서(遺書)는 이렇게 담담히 말하고 있다. “세월호 사고시 기무부대원들은 정말 헌신적으로 최선을 다했음. 5년이 다되어가는 지금 그때의 일을 사찰로 단죄한다니 정말 안타깝다.”

      아무개 논객은 이렇게 적었다. “자살(自殺)의 형식을 빈 타살(他殺)”이라고... 즉 누군가가 살인(殺人)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많은 국민들이 분개(憤慨)하고 있다. 추모의 물결이 일고 있다. 
      하지만, 그의 죽음과 그 추모의 물결을 지켜보는 그들은 정작 나섬을 자제한 채 ‘통분(痛憤)의 눈물’을 흘리며 소리 없이 흐느끼고만 있다고 한다. 그들이 존재했을 때도 그랬듯이...

      다만 “군을 사랑했던 선후배 동료들께 누를 끼쳐 죄송하고 다시 한 번 사과를 드립니다.”는 그의 유서(遺書) 한 구절의 깊은 뜻을 새길 뿐이라고 한다. 
      그가 흘린 피는 그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70년을 이어온 전통의 그들에게 무참하게 덧씌워진 낙인(烙印)과 불신과 오해를 씻어내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앞으로 잊혀질 지도 모르는 그들의 노래 2절은 이렇다.[후렴 생략]

      겨레와 국토수호 우리의 사명
      청춘의 몸과 마음 모두 바쳤다
      역사가 우리를 명령하는 날 
      범같이 사자같이 달려 나가리

      고(故) 이재수 사령관의 명복(冥福)을 빈다. 그리고 그의 영전(靈前)에 이 노래를 바친다.
    <이 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