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 내용-경찰 조사 서로 달라… 여론 양극화되자 청와대 "답변 시기 말할 상황 아니다"
  • 여성 혐오 폭행 사건으로 알려져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던 이른바 '이수역 폭행사건' 관련 청와대 국민 청원이 16일 오전 11시 기준 34만 명을 돌파했다. 청와대의 답변 기준인 20만 명을 이틀 만에 훌쩍 넘겼다. 

    평소 여성 인권을 강조해온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을 감안하면 여성 관련 범죄에 단호한 대처를 강조하는 답변이 예상되지만, 사건의 전말이 재조명되면서 여론의 방향이 정반대로 불고 있어 청와대의 고민도 깊어지는 모양새다. 나아가 정치권에서는 소위 '떼법'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비판도 함께 나온다.

    靑 청원답변 기준 충족한 '이수역 폭행사건'

    청와대가 '이수역 폭행사건'에 대해 답변을 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이수역 폭행사건〉청원이 34만명을 기록하면서, 청와대의 답변 기준을 일찌감치 충족했기 때문이다.

    지난 14일 〈이수역 폭행사건〉 청원에서 청원인은 "화장을 하지 않고, 머리가 짧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 두 명이 남자 5명에게 폭행을 당했다"며 "가해자의 신원을 밝혀주시고, 무자비하게 피해자를 폭행한 가해자에게 죄에 맞는 처벌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이 청원인은 "폭행당한 피해자는 두개골이 보일 정도로 머리가 찢어졌고, 피해자 중 한 명은 쓰러졌다"며 "경찰은 신고 후 30분 뒤에 도착하였고, 진술을 하는 와중에도 가해자는 당당한 태도를 보였고 피해자를 위협과 협박을 했다. 자신 또한 피해자라며 우겼다"고 했다.

    이어 경찰의 태도도 문제 삼았다. 청원인은 "가해자 5명과 피해자 한 명을 같이 놓고 진술하도록 하는 것부터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가해자가 진술 도중 피해자를 위협하도록 경찰이 자리를 만들었다고 생각된다"고 적었다.

    이같은 청원은 자신을 피해자로 지칭한 여성이 지난 13일 새벽 4시경 이수역의 한 맥줏집에서 겪은 사건과 관련, 쇼셜미디어에 게재한 글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해당 글은 여초카페(여성 사용자의 비율이 높은 인터넷 카페)자 및 커뮤니티 등 인터넷상에서 퍼져 공분을 샀고, 순식간에 확산됐다.

    경찰조사 시작되자 드러나는 반전

    하지만 경찰의 조사가 시작되면서 이수역 폭행 사건의 전말이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16일 서울 동작경찰서는 이수역 폭행사건을 남녀 일행의 쌍방폭행으로 결론 내렸다. 청원 글에서 제기됐던 일방적 폭행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조선일보〉는 "몸싸움의 발달은 여성 일행 측이 먼저 남성의 손을 친 것"이라며 "남성 측의 정당방위 여부는 추가 조사로 판단하겠다"는 경찰의 발표를 인용해 보도했다. 경찰과 목격자들의 발언을 종합하면, 이수역 폭행 사건은 여성 일행 2명이 옆 테이블의 연인에 폭언을 하며 말다툼이 생겼다. 여기에 다른 테이블에 앉은 남성들이 개입했고, 이에 여성 일행이 남성 일행 쪽으로 다가가 먼저 손을 쳤다. 이에 남성 일행은 손을 때린 여성의 모자를 쳐서 벗기며 반격했고 이내 몸싸움으로 번졌다는 것이다. 

    이후 남성 일행이 주점을 빠져나가고 여성 일행이 뒤따라가면서 주점 외부 계단에서 2차 몸싸움이 벌어졌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여성 일행 중 한 명이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실신했다. 현재까지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화장을 하지 않고, 머리가 짧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 두명이 남자 5명에 폭행을 당했다"고 서술돼 있는 청원의 내용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뒤집히는 여론…자성 촉구하는 목소리도

    여성 혐오 범죄라며 공분하던 여론이 곧 뒤집혔다. 오히려 〈이수역 폭행사건의 철저한 수사와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가해 여성의 성추행과 모욕죄 처벌을 요청한다〉는 청원이 약 7만 건의 청원을 받았다.

    이수역 폭행사건 관련 경찰 발표 기사에 한 여성 네티즌은 "내가 10년 동안 숏컷이었는데 머리가 짧고 화장을 하지 않았다고 집단 폭행당하는 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이냐"며 "거기에 선동되는 사람은 어째야 하냐"고 개탄했다.

    편을 갈라 특정 성별을 무조건 감싸고 상대 성별에 공격성을 보이는 소위 '떼법' 문화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한 네티즌은 같은 게시물에서 "이런 사소한 시비가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가고 30만이나 동참했다는 게 더 뉴스거리가 아니냐"며 "청원에 동참한 사람들은 반성해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다만 이런 경찰 조사에도 불구하고 일부 네티즌들은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네티즌은 커뮤니티에 "이수역 살인미수 사건이 선동이라는 글을 믿지 마라"며 "남경을 믿을 수 있느냐"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여성인권 강조해온 靑은 '난감'

    청와대엔 당혹감이 읽힌다. 양측이 모두 만족할만한 대답을 내놓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데다, 경찰수사가 청원의 내용과 다른 만큼 청원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 이수역 폭행사건과 관련해 청와대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이고 청와대 청원도 진행 중이기 때문에 지켜보고 있다"며 "아직 (답변) 시기를 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청원 마감까지 한달 가까운 시간이 남아있는 만큼 관련 내용이 취합된 후 답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간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후부터 줄곧 여성 인권을 강조해왔다. 문 대통령은 미투 운동이 확산되던 지난 2월 26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우리 사회 전 분야로 미투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곪을 대로 곪아 언젠가는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던 문제가 이 시기에 터져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특히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우리 정부의 성 평등과 여성 인권에 대한 해결 의지를 믿는 국민의 기대감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특히 강자인 남성이 약자인 여성을 힘이나 지위로 짓밟는 행위는 어떤 형태의 폭력이든, 어떤 관계이든, 가해자의 신분과 지위가 어떠하든 엄벌에 처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