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전문가들 '미국의 의지' 강조... "트럼프 향한 유럽 국가들의 선제 압박" 분석도
  • 유럽 순방 당시 엠마누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뒤 기자회견을 하는 문재인 대통령.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유럽 순방 당시 엠마누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뒤 기자회견을 하는 문재인 대통령.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3일부터 21일까지 유럽 5개국을 순방했다. 문 대통령은 프랑스를 시작으로 가는 곳마다 대북제재 완화를 강조했다. 그러나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미국의 일부 한반도 전문가는 이를 두고 “미국의 막후 외교가 승리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프랑스와 영국, 독일이 전통적으로 북한에 대해 보인 태도를 감안할 때, 오히려 유럽이 트럼프 정부를 향해 "북한 비핵화에서 CVID는 양보할 수 없다"고 천명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은 지난 20일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 재단 대표, 패트릭 크로닌 신안보센터(CNAS) 아시아 태평양 담당 소장을 초청해 대담을 가졌다. 문재인 대통령의 유럽 순방과 교황의 방북을 소재로 이뤄진 이날 대담에서 자누지 대표와 크로닌 소장은 “북한이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취하기 전에 대북제재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성급하다”는데 뜻을 같이 했다. 

    문 대통령의 대북제재 완화 주장에 대해, 임마누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시행하기 전에는 대북제재를 해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크로닌 소장과 자누지 대표는 “북한 핵무기의 확산을 막으려는 나라가 미국 외에 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매우 중요한 신호”라고 풀이했다. 

    이날 대담에서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아셈(ASEM, 아시아 유럽 정상회의)에서 50여 참가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를 완전히 이행함과 동시에 북한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해야 한다”란 내용으로 내놓은 공동 성명도 화제에 올랐다. 두 사람은  “미국의 막후 외교가 승리했다는 증거”라고 호평했다.

    크로닌 소장과 자누지 대표는 그러나 이 같은 외교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북한의 대화가 비핵화를 강제할 수 있는 게 아니란 점을 주목했다. 두 사람은 또 중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에 의해 대북제재가 약화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 지금은 ‘경고’지만 현실 될 수도

  • VOA의 '워싱턴 톡(Talk)'이라는 대담에 나온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 재단 대표와 패트릭 크로닌 CNAS 아태지역 소장은
    ▲ VOA의 '워싱턴 톡(Talk)'이라는 대담에 나온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 재단 대표와 패트릭 크로닌 CNAS 아태지역 소장은 "한국이 비핵화보다 남북관계 개선에 매달릴 경우 미국의 제재를 받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VOA 워싱턴 톡 프로그램 화면캡쳐.
    두 전문가는 또한 최근 美재무부가 7개 한국은행들과 전화 회의를 통해 ‘세컨더리 보이콧(유관 3자 제재)’을 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대북제재 준수를 촉구한 것과 관련해서는 “지금은 ‘경고사격’ 수준이지만 한국 정부가 계속 남북관계 개선을 비핵화보다 앞세울 경우에는 본보기 차원에서 제재를 가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처음부터 강력한 제재를 하기 보다는 ‘사다리 오르기’ 식의 점진적 제재 가능성을 높게 봤다. 미국이 동맹국에게도 제재를 가할 경우 동북아시아 지역 국가들에게 상당히 큰 충격을 줄 것이고, 이는 역내 국가들의 대북제재를 더욱 강하게 만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자누지 대표와 크로닌 소장은 한국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북한 비핵화를 이루겠다고 주장하는 데에도 일리는 있다고 밝혔다. 다만 “남북 관계 진전이 한반도 안보를 강화하고 휴전 조치들을 준수하며 상호 신뢰가 구축되었을 경우에만 그렇다”고 전제했다. 

    남북관계 개선 진척도가 북한의 비핵화 조치보다 너무 앞서 나간다면 미국이 한국을 억누르고, 이것이 다시 남북한과 미국 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고무 밴드’와 같은 탄성을 가진 한미 관계 덕분에 지금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한국이 너무 앞서나갈 경우 위험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었다.

    자누지 대표와 크로닌 소장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 가능성에 대해서도 평가했다. ‘미국의 소리’ 방송은 “한편에서는 교황이 방북하면 북한 일부라도 종교의 자유가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북한에 정상국가 이미지만 만들어 주고, 실질적 비핵화에는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크로닌 소장은 “교황의 방북은 단기적으로 김정은에게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하는데 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누지 대표는 “교황의 방북으로 북한인권이 급속하게 개선될 가능성은 없지만 한국인의 통일 의지를 재확인하고 북한 사람들에게 ‘자유의 개념’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두 전문가는 교황의 방북이 장기적으로는 북한 내부에 인권과 자유의 개념을 확산시키는데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두 전문가는 “북한과 김정은은 스스로를 정상적인 국가, 정상적인 국가 지도자로 보이기를 원하고 있는데 교황 초청은 이런 정통성 확보 노력의 일환”이라며 “교황이 북한을 방문한다고 해도 문재인 대통령이나 트럼프 美대통령이 북한을 찾는 것 이상의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소리' 방송이 전한 두 전문가의 의견은 미국의 시각을 철저히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유럽 관계의 특수성 주목해야
    북한 최고위층은 프랑스에 대한 동경심이 강하다. 김정은의 모친 고용희는 프랑스에서 암 치료를 받다 2004년 사망했고, 장성택의 딸 장금송은 파리 유학 중이던 2006년 현지에서 자살했다. 

    이외에도 김씨 일가의 프랑스 동경은 유별나다. 북한 외무성은 오래 전부터 프랑스와의 수교를 추진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북한의 수교 요청을 매번 매몰차게 거절했다.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인권 문제 때문이었다. 독일이나 영국 또한 북한 최고위층에게 매우 중요한 나라지만, 이들 나라에서는 북한이 비핵화와 주민들의 인권상황을 개선하기 전까지는 제재를 풀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이런 유럽 국가들이 보기에 "북한 비핵화 협상이 대단히 잘 돼 가고 있다"는 트럼프 美대통령의 말은 영 미덥지 않다. 유럽 국가들이 CVID 방식의 비핵화를 강조하는 성명을 내놓은 것은, 그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