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개 만찬서 노래… 최현우 마술쇼 땐 마이크도 준비 안돼 "두 사람 만을 위한 쇼" 비판
  • 오래 전 이야기다. 사무실에서 야간 당직을 서고 있는데 자정 무렵 청와대에 출입하던 한 선배가 고주망태가 된 상태로 들어왔다. 빈 의자에 철퍼덕 앉아 꾸벅꾸벅 졸더니 갑자기 눈을 뜨고 "그 XX"라는 욕설을 내뱉었다. "그 XX가 뭐라고 걔네들이 와? 건방진 XX."

    듣고보니 청와대 모 비서관 주재로 거나한 술자리가 열렸던 모양이다. 그 자리에 당시 잘나가던 아이돌그룹 멤버들이 참석했다고 한다. TV브라운관에서나 볼 수 있는 톱스타를 술자리에 불러낸 장본인은 당시 청와대 비서관이던 B씨였다.

    술자리에 동석한 선배기자는 예상치 못한 아이돌 가수의 등장에 적잖이 당황했다고 한다. B씨의 전화 한 통에 톱가수가 쪼르르 달려오는 모습을 보고 화가 난 선배기자는 B씨와 대판 말다툼을 벌이다 그 자리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선배의 말을 들으니 이 아이돌그룹의 소속사 대표 C씨가 정치권에 줄을 잘 대는 편이었다고 한다. 그 덕분인지 그 시절 C씨가 거느린 가수들이 지상파 방송에 자주 나왔다. 물론 정치권에서 힘을 쓴다고 방송 출연이 가능해지는 시대는 지났지만, 그들이 뭔가 탄력을 받고 있다는 느낌만은 지울수 없었다.

    최현우, 마이크도 없이 마술쇼

    9월 18일부터 20일까지 3일간 진행된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 대중가수들과 마술사가 동행했다. 외교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성사된 남북정상회담에 정치와 무관한 가수들이 간 것도 의아하지만, 정작 이들이 아무런 공식 활동도 하지 않고 돌아왔다는 점에서 비판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모든 국가공식행사는 국민의 세금으로 이뤄진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소요된 경비도 정부 예산의 예비비로 충당했다. 숙박비, 식대 등 수행원들에게 들어가는 모든 경비는 나라에서 부담했다.

    그런데 한 번 뜨는 데에만 1천여만원이 소요되는 '공군 1호기'를 타고 북한으로 날아간 예술 수행원들이 '공식적으로' 한 일이라곤 "장관이었다" "감동적이었다" "맛있었다"는 '감상평'을 전한 게 전부였다. 첫날 밤 만찬장에서 지코가 노래를 부르고 최현우가 마술쇼를 선보인 건 어디까지나 비공식적인 일정이었다.

    이번 방북단에 합류한 현정화 렛츠런 탁구단 감독도 "그날 행사는 어떤 특별 공연이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올라가 노래 한 곡씩 부른 것이었다"며 흥을 돋우기 위해 즉석에서 이뤄진 공연이었음을 시사했다. 심지어 최현우가 두 정상 앞에서 마술쇼를 할 땐 마이크도 없어, 주위 사람들도 무슨 마술을 했는지 모를 정도였다.

    가수 알리 노래할 때도 마이크 없어

    막판에 추가로 합류한 가수 알리는 정상회담 마지막 날 백두산 천지에서 '생목(마이크 없이 생 목소리)'으로 '아리랑'을 불렀다. 문재인 대통령의 백두산 방문 자체가 원래 일정에 없던 것이기 때문에 이날 알리의 노래 역시 기획된 공연으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일각에선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연예인들이 참석한 것을 두고 "대중문화 교류라는 큰 틀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하지만 만찬장에서 즉석으로 불리워진 노래 몇 자락이 남북문화교류의 물꼬를 틀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예술인들이 평양이라는 폐쇄적인 장소에서 그것도 비공개로 두 정상만을 위한 쇼를 펼치고 돌아왔다. 이건 남북교류도 뭐도 아니다. 사실상 한국 연예인들이 정치 행사의 들러리 역할만 하고 돌아온 셈이다.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딴따라?

    과거 군사 정권 시절 유명 연예인들이 권력자들의 술자리에 불려가 그들의 흥을 돋워주는 일을 했다는 일화들은 비일비재하다. 물론 개인의 사사로운 욕망을 채우기 위해 연예인을 불러낸 것과, '나랏일' 때문에 연예인을 초청한 것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이번 예술 수행원들이 한 일은 정치 행사의 흥을 돋우는 분위기 메이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해외에선 '한류스타'로 칭송받는 연예인들을 여전히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딴따라 정도로 취급하는 것 같아 씁쓸할 따름이다.

    [사진 출처 = MBN 방송 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