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도무인정찰기+ 공중조기경보통제기로 '한반도' 전역 감시…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어
  • ▲ 국방부가 지난 19일 공개한 남북 비행금지구역. 항공기 종류 별로 구역이 다르다. ⓒ국방부 공개자료.
    ▲ 국방부가 지난 19일 공개한 남북 비행금지구역. 항공기 종류 별로 구역이 다르다. ⓒ국방부 공개자료.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이 19일 서명한 ‘평양공동선언’의 첫 대목은 "남북 간 군사적 긴장완화를 위한 노력"이었다. 이를 보면 “남북은 이번 평양정상회담을 계기로 체결한 ‘판문점 선언 군사 분야 이행합의서’를 평양공동선언의 부속 합의서로 채택하고 이를 철저히 준수하고 성실히 이행하며, 한반도를 영구적인 평화지대로 만들기 위한 실천적 조치들을 적극 취해 나가기로 했다”고 돼 있다.

    ‘평양공동선언’에 이어 송영무 국방장관과 노광철 北인민무력상이 서명한 남북군사합의서에는 크게 네 가지 분야에서 ‘우발적 충돌 방지’를 위한 합의를 만들어 냈다. 첫 번째는 육상과 해상, 공중에서의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한 훈련금지 지역, 비행금지 지역 설정, 두 번째는 비무장 지대 내에 있는 감시초소(GP) 철수 및 남북공동 유해발굴사업 추진, 세 번째는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드는 것, 네 번째는 ‘통행·통관·통신’ 등 ‘3통’이 가능하도록 군사적 보장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11월 1일부터 ‘훈련·비행금지 구역’ 설정

    남북군사합의서에는 “쌍방은 2018년 11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 상대방을 겨냥한 각종 군사연습을 중지하기로 했다”고 돼 있다. 세부적으로는 군사분계선에서 5km 이내에서는 포병 사격훈련과 연대급 이상 부대의 야외기동훈련을 완전히 중지하기로 했다. 해상에서는 서해 덕적도 북쪽부터 초도 남쪽까지 수역과 동해 속초 북쪽 통천 남쪽 수역에서 포 사격 및 해상기동훈련을 중지하기로 했다. 또한 공중에서는 군사분계선 일대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고 실탄사격을 포함한 전술훈련을 중단하기로 했다.

    포 사격 중단은 쉽게 이해가 되지만 비행금지구역 설정은 약간 복잡하다. 남북한은 항공기 종류에 따라 비행금지구역을 달리 설정했다. 우선 공군과 해군 전술기 대부분을 차지하는 고정익 항공기는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동부 지역은 남북 각각 40km, 서부 지역은 20km를 비행금지구역으로 정했다. 고정익 항공기에 비해 속도가 느리고 운항고도가 낮은 회전익기(헬기)는 군사분계선 기준 10km까지를, 무인기는 동부 지역 15km에 서부 지역 10km, 기구는 남북 모두 25km로 설정했다.

    남북은 “다만 산불 진화, 조난 구조, 환자 후송, 기상 관측, 영농지원 등을 위한 항공기 운용이 필요할 경우 상대방에 사전 통보하고 비행할 수 있도록 하고, 화물기를 포함한 민간 여객기에 대해서는 비행금지구역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합의했다. 만약 비행금지 약속을 위반할 경우에는 경고 교신 및 신호 → 차단 비행 → 경고 사격 → 군사적 조치의 절차를 적용하기로 약속했다.

    한국과 북한, 누가 더 양보했나?

  • ▲ 한국군의 핵심 정찰자산 중 하나인 백두 특수정찰기.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국군의 핵심 정찰자산 중 하나인 백두 특수정찰기.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남북 간 비행금지구역 설정 소식이 알려지자 일각에서는 “이제 북한군의 동향 파악이 불가능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는 2014년 4월 군이 기자들에게 공개한 무인정찰기에 적용되는 이야기다. 당시 군이 공개한 바에 따르면, 무인정찰기 ‘송골매’는 120~150km/h의 속도로 순항하면서 80km 직경의 지역을 정찰하는 능력을 가졌다. 그러나 ‘송골매’는 전시 군단급 부대를 지원하기 위해 사용된다. ‘송골매’는 주간에는 군사분계선 이북 20km까지, 야간에는 10km까지 북한 상황을 정찰할 수 있다.

    그런데 평시 한국군의 주력 정찰자산은 영상정보 수집용 ‘금강’ 정찰기, RF-16 정찰기, 신호정보 수집용 ‘백두’ 정찰기다. ‘금강’과 RF-16은 과거 비행금지선인 군사분계선 남쪽 15km 일대에서 북한 후방 100km까지 정찰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강’과 RF-16에 장착된 전자광학장비(IOT)와 합성개구레이더(SAR)는 눈이나 비, 구름 등에 구애받지 않으며 북한군 장비 종류까지 파악할 수 있는 수준이다. 수집한 정보는 지휘부를 거쳐 실시간으로 전선에 전달된다.

    ‘백두’ 정찰기의 경우 북한 전역을 대상으로 무선통신을 감청할 수 있다. 북한군이 2000년대 들어 기존의 동축 케이블 통신망을 광케이블로 바꾼 뒤 ‘백두’ 정찰기의 무선통신 감청능력은 북한의 동향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한다.

    한국군은 미군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북한의 전방 일대만을 감시할 수 있는 게 현실이지만 2019년 상반기부터 도입할 고고도 무인정찰기 ‘RQ-4 글로벌 호크’가 전력화되면 이 같은 맹점을 해소할 수 있다. ‘글로벌 호크’는 20km 고도에서 36시간 동안 머물면서 적진을 감시한다. 감시 가능 거리는 500km로 알려져 있다. 공중조기경보통제기와 조합하면 한반도 전역을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다.

    반면 북한은 소형 무인정찰기 등을 사용해 한국을 정찰한다. 전역(戰域)을 대상으로 한국군의 동향을 살피는 북한의 정찰자산은 ‘기구’라고 한다. 기상측정 장비로 위장할 수 있는 ‘기구’는 성층권까지 올라갈 수 있어 괜찮은 영상정보장비만 있다면 먼 거리까지도 감시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의 영상정보장비 수준에 많은 기대를 하기는 어렵다.

    남북은 이번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면서, 무인기와 기구까지 포함시켰다. 이는 북한 나름대로 잔꾀를 부리고 한국군이 양보한 것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양보에는 “이 정도 양보해도 북한 정도는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는 군 당국의 자신감도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