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 하나 주면 안잡아 먹지' 호랑이 공갈 앞에선 나라,떡 다주고 팔다리 주고 목숨까지 주는 날 기다리고 있나.
  • 이동욱 객원 논설위원 

    혁명이란 급격한 변화를 통해 보다 나은 방향으로의 획기적 전진을 말한다. 경제적 혁명으로서의 산업혁명은 농업사회에서 공업사회로의 획기적 전진이었고 정보화 혁명은 산업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의 괄목할만한 변화였다. 그에 비해 정치적 혁명은 권력 주체와 권력 구조의 급격한 교체를 의미한다.
    20세기 동안 한반도에서 벌어진 경제적, 정치적 혁명들은 오늘날 남과 북의 극명한 체제 차이로 설명된다. 거의 동시에 남과 북이 정부를 수립한 지 70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러 대한민국의 명운을 다투는 현상도 이 혁명들에서 설명된다.

    모두가 알다시피 대한민국은 대륙 끝자락에서 소중화(小中華)의 전통적인 봉건체제로부터 이탈해 해양문명권으로 진입하며 태어난 혁명국가였다. 이 나라의 정신은 봉건적 계급질서 타파를 통한 개개인의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 만들기였다. 수백 년 동안 내려온 반상차별, 남녀차별, 문무차별, 출신차별 게다가 사농공상의 직업차별 등등 온갖 봉건적 차별로부터 국민 전체가 엑소더스 했던 위대한 혁명이었다. 권력은 개인과 가문의 밥그릇을 보장하는 자리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자리였고, 정확성과 신뢰를 근간하는 상공업 종사자들과 과학 기술자들이 우대받으며 자조, 자립, 자주의 가치를 지향하는 천지개벽의 근대화 혁명이었다.

    반면 한반도의 북쪽에서는 레닌과 스탈린의 지휘아래 사회주의 혁명국가가 등장했다. 출발은 북쪽이 빨랐다. 게다가 잔혹하고 야무졌다. 일제가 패망하기 전부터 한반도에 진주한 소련군들은 정치정보공작대(MGB-KGB의 전신)를 통해 한반도 적화를 위한 정치공작 시스템을 이식했다. 한 달이나 늦게 남한으로 진주한 미군들은 그러한 기능을 가진 정보기구 OSS(전략정보국)를 해체하고 들어왔다. 당연히 남한에 대한 정보도, 지식도, 비전도 없었다.

    1945년 11월에 김일성은 평양정치학원 설립을 구상하고 학교 터를 선정했다. 이 학원은 이듬해 2월 개교한다. 이후 강동정치학원, 봉화정치학원, 금강정치학원...나아가 김일성정치군사대학, 김정일정치군사대학 등 최고 지도자의 이름을 붙인 권위있는 정치군사대학들로 이어졌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들 학교는 엘리트들을 모아서 정치학과 군사학을 가르친다. 선전·선동기술, 조직 구축법, 협상술, 통일전선전술, 유격전술, 합법·비합법·반합법 투쟁전술 등등을 배우며 이 학교를 거치면 사회주의 혁명가로 활동할 탁월한 능력을 갖게 되는 바, 대개 대남 공작원을 거쳐 살아남은 자들을 중심으로 후학 양성의 길을 걸으며 북한 핵심계층의 한 주류가 된다.
    남쪽 대한민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 같은 ‘정치전쟁 교육시스템’으로 북한은 헐벗고 굶주리면서도 70년간 남한 사회의 적화 혁명을 위해 달려왔다. 그 결과가 바로 오늘날 한반도 명운에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의 정체인 것이다.

    어째서 저들의 그림자가 대한민국을 뒤덮은 것일까. 손자병법 군형편(軍形篇)의 ‘불가승재기, 가승재적(不可勝在己, 可勝在敵)’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손자는 ‘상대를 이길 수 없는 것은 나에게 원인이 있다’고 했다. 우리가 이 지경이 된 것은 상대가 잘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부족해서이다. 우리는 무엇이 부족했나?
    선거를 보면 알 수 있다. 선거란 평화시의 정치전쟁이다. 그런데 우파들의 정치전쟁은 전쟁 의 기술은 고사하고 전쟁의 기본도 모르는 주먹구구다. 가르치는 곳도 없고 배우려는 자도 없다. 이번 서울시 교육감 선거를 보자. 오래 전부터 우파들은 전교조를 이길 선거를 꿈꾸면서 단일화에 목을 맸다. 단일화만 하면 선거에 이길 수 있다고 자만과 오판을 거듭했다. 상대는 바보일까? 상대 진영은 6개월 전부터 하부조직을 구축해 가며 선거전에 만반의 채비를 갖춰오고 있었지만 우파쪽은 선거 한 달을 남겨놓고도 후보조차 확정하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단일화인지 아닌지 애매한 단일화를 이뤘지만 결과는 패배였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는 484개 지역에 플래카드를 내걸 수 있다. 플래카드 제작비용이 부족한 후보들은 전부 내걸지 못한다. 가장 효과적인 지역에 내걸어야 후보 인지도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데, 박선영 캠프는 강남의 한 지점에 무려 8개의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선택과 집중의 결과인지 홍보의 기본을 이토록 무시할 수 있는 저 배짱은 도대체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것인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당연히 강북의 수많은 지역에서는 박선영 후보가 누구인지, 출마하는지 조차 몰랐다. 행인도 거의 없는 서울 변두리 어느 지하철 역사 앞 유세장에서는 땡볕 아래 선거 운동원으로 동원된 할머니들만이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선거 캠프 안에서는 심야 회의 결과가 다음날 아침이면 뒤집어지기가 다반사였고 리더의 의사결정이 늦어지는 와중에 선거때마다 홀연히 나타나 전문가 행세하는 외부인들의 갑질로 내부 갈등이 극심했다고 한다.

    선거 전문가를 자처하는 필자가 아는 한, 선거의 기본은 자본력이다. 필자가 가장 많이 조언한 내용은 “돈 없으면 포기하라”였다. 손자는 자신의 병법 작전편에서 “돈 없으면 전쟁하지 마라”고 강조한다. 재원 없이 괜히 나섰다가는 애꿎은 병사들만 죽이고 노예가 되는 집단불행을 자초하기 때문이다. 돈 많은 부자를 불행하게 만드는 방법은 선거에 출마하게 만드는 것이란 말도 있다. 그만큼 재원이 많이 소요된다. 뒤집어 보면 시간과 사람이 그만큼 필요하다는 말도 된다. 사람도 그냥 사람이 아니라 훈련된 사람을 말한다. 없다면 돈을 주고 사서 써야 이길 수 있다. 그다지 어려운 기술도 아니다. 욕심 없이 살펴보면 시간 계산, 사람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경우가 드물다. 승자가 드믈 듯이.

    서울시 교육감 선거는 법정 선거비용만도 34억9천4백만원이나 된다. 서울시장 선거 비용과 같다. 이 정도 선거자금을 쓸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했다는 것은 교육감 선거가 시장 선거와 동일한 규모와 강도로 치러질 것이란 예측이 가능하다. 서울시 송파 갑구 국회의원 선거비용이 1억6천6백만 원인 것을 비교해 보면 그 22배나 되는 교육감 선거는 결코 만만한 아마추어들의 게임이 아니라 준대선급에 맞먹는 거대한 정치전쟁인 것이다.
    사업을 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동일한 기간 내에 34억 9천만 원짜리 사업과 1억 6천만 원짜리 사업의 규모와 업무 강도의 차이를. 국회의원 선거 비용의 22배나 되는 선거전에서 우파들은 어떻게 대응했나 돌아봐야 한다.
    더 씁쓸한 것은, 개표 후에 36.2%의 득표를 두고 “그만하면 잘했다”, “그래도 그게 어디냐”며 손을 터는 모습들이다. 한 두 시간 걸리는 바둑 게임도 패배자들은 복기(復碁)를 통해 아픈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애를 쓰는 데, 도무지 우파들은 선거에서 지고 나면 복기하는 법이 없다. 그러면서 다음번 선거에서도 여전히 같은 실수, 아니 더 희한한 실책들을 연발해 간다. 이런 사람들은 절대로 정치 전쟁터에 나오면 안 된다. 본인도 불행해 지지만 그를 뒤따랐던 대중들이 더 불행해 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선거후에 반성하는 사람이나 책임지는 사람들이 없다.

    정치전쟁터인 선거판이 이런데 여타 다른 곳은 어떠할까. 방송을 보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방송이야 말로 국가권력을 견제하고 잘 못된 길로 가려 할 때 진실과 공정보도로 국민과 국가를 일깨워야 한다. 그것이 혁명 국가 대한민국의 혁명정신 아니던가. KBS출신 칼럼니스트 홍지수씨의 ‘펜 앤 마이크’ 6월24일자 기고문에는 이런 글이 실려있다.
      
    <문 정권 하의 방송통신위원회는 공영방송을 장악하기 위해 황당한 사유를 내세워 절차도 무시하고 KBS 이사 강규형 교수를 부당하게 해임했다. 물러나라는 온갖 회유와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원칙을 지키려 했던 강규형 교수는 그 과정에서 KBS 언론노조 노조원들에게 폭행까지 당했고 지금 여러 건의 소송을 진행하면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강 교수가 재직하는 학교는 강 교수와 관련해 끊임없이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야당 몫으로 임명된 이사들 가운데 일부는 몸 사리기와 눈치 보기, 침묵과 비겁과 변절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전우는 총 맞고 피 흘리고 있는데 그 알량한 이사 자리 몇 달 더 해먹으면서 목구멍에 밥풀떼기 집어넣을 생각이나 하고 있다. 출처 : 펜앤드마이크(http://www.pennmike.com)>
      
    그리고 강규형 이사 해임을 “초법적 폭거”로 규정하고 해임과정에서 발생한 강 이사에 대한 인권유린을 파헤치겠다는 성명서를 발표한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위한 변호사 모임>의 후속 조치는 성명서 내용과는 거리가 있으며, 일부 헌신적인 분들 빼고는 유명무실하다고 한다.
    우리는 강규형 교수가 옳고 언론 노조들은 잘 못됐다는 걸 안다. 그러나 정치전쟁은 옳은 쪽이 이기는 게 아니라 강한 쪽이 이기는 싸움이다. 대한민국의 옳은 쪽 진영은 왜 이토록 정치전쟁에 무능한 것일까.
    ‘적을 우습게 알면 반드시 패한다’는 ‘경적필패(輕敵必敗)’의 수순을 밟고 가는 것일까.
    우리의 체제가 북쪽의 철지난 사회주의보다 우월하다는 자만심으로 정치전쟁을 봉건시대의 정치놀음 정도로 알아왔던 것일까.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하며 떡장수 할머니를 위협하던 호랑이에게 떡을 하나 둘 씩 내어주던 할머니는 결국 자신의 팔과 다리를 하나 씩 내 주게 된다. 이것이 대남적화 전략의 스케줄이 아니던가.
    그러하다면 ‘지킬 것을 지킨다’며 ‘보수’라는 방패로 ‘가부장적 권력’을 뒤집어 쓴 채, 세금은 내 떡이 아니므로, 내 자식들은 유학을 보냈으므로, 가치는 내 알 바 아니므로, 이념은 시대가 변했으므로, 체제를 위협하던 모든 ‘사태’를 ‘민주화 항쟁’이라 해 주고, 보훈장병보다 훨씬 많은 ‘민주화 보상금’도 내 주고, 납북자와 국군포로 송환에는 눈감고, 공산주의에 민족주의가 가미되면 피아구분도 못하고, 동료 이사가 억울하게 잘려나가도 내 자리만 붙어 있으면 침묵하고, 좌익이 이긴 선거판을 부러워하면서 매 번 보수정당이 좌클릭 해 가며 기득권을 누려온 때문이 아닌가.

    만약, 이것이 맞는다면 대한민국의 패배 원인은 ‘경적필패(輕敵必敗)’가 아니라 기회주의자들에 의한 ‘보수필패(保守必敗)’일 것이다. 

    상대는 사회주의 혁명을 하자고 70년 동안 달려들었는데 우리의 보수주의자들은 자유민주체제를 지키자며 얼마나 치열하게 달려들어 싸웠나. 정부를 제한하고, 시장의 자유를 확산시키고, 개인의 자유를 신장하는 법치를 추구하는 치열한 전투를 벌인 적이나 있었나? 어떤 컨텐츠도 없는 허울 좋은 ‘보수’로 자유민주를 지키겠다며 깔고 앉아 선조들이 만들어 낸 떡들을 사회주의 혁명분자들에게 하나씩 다 던져 주다가 이제는 팔 다리를 다 내 줄 차례가 되지 않았나.

    오늘의 대한민국이 세계를 놀라게 한 성공의 배경엔 이승만과 박정희라는 위대한 지도자가 있었음을 누구나 인정한다. 그러나 그 두 분은 혁명가였지 보수 정치가가 아니었다. 어쩌다 우리는 이승만과 박정희의 동상을 애틋하게 모시면서도 두 분의 혁명정신은 완벽하게 외면한 채 보수의 굴레 속에서 안착하는가.
    조선의 봉건체제에서 이탈한 북한은 사회주의로 신 봉건체제를 구축했는데, 우리는 이승만 박정희 두 혁명가를 떠받들면서 구 봉건체제로 돌아가는 중이다. 임란때 왜적도 막지 못했고 민비 암살도 못 막았던 조선조 왕실호위대가 6·25를 이겨낸 국군의 군악대를 밀어내고 매일 서울 도심을 행진하는 오늘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혁명국가이며 여전히 혁명중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제한된 정부, 시장의 자유, 법치를 통한 개인의 자유 확대를 위해 우파는 혁명정신으로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 팔 다리 다 잘리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