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를 위해 희생한 가치의 귀중함을 잘 가르치지 않는 우리와 대조
  • ▲ 미국 오하이오주 '파타스칼라'라는 작은 도시에서 만난 풍경. 미국에서는 평소에도 성조기를 내건 집을 흔하게 볼 수 있다.
    ▲ 미국 오하이오주 '파타스칼라'라는 작은 도시에서 만난 풍경. 미국에서는 평소에도 성조기를 내건 집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올해는 6·25 전쟁 발발 68주년이다. 이제는 참전용사들을 주변에서 만나기도 쉽지 않고, 6·25의 참상을 기억하는 세대도 얼마 남지 않았다.

    6·25가 남침(南侵)인지 북침(北侵)인지 잘 모르겠다는 중·고등학생들이 많다. 2013년 6월 17일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청소년의 10명 중 7명이 ‘6·25전쟁이 북침’이라고 응답했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이야기하면서 “충격”이라고 표현했다. 초등학생 중에는 6·25를 일본의 침략으로 알고 있거나, 임진왜란과 혼동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조사결과도 있었다. 

    아직은 전쟁을 겪은 세대가 멀쩡하게 두 눈을 뜨고 살아 있는데도 6·25에 대한 인식이 이 정도인데, 이들이 모두 사라지고 난 뒤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 ▲ 미국 오하이오주 외곽의 작은 도시인 파타스칼라 시내 주택밀집지역. 집집마다 성조기가 걸려 있었다.
    ▲ 미국 오하이오주 외곽의 작은 도시인 파타스칼라 시내 주택밀집지역. 집집마다 성조기가 걸려 있었다.
    시골도시에서 발견한 미국인들의 애국심

    필자는 수년 전 개인 연수 차 미국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시에 8개월 동안 머물면서 평범한 미국인들의 일상을 접할 기회를 자주 가졌다. 필자가 머물렀던 곳은 정확히는 콜럼버스에서 동쪽으로 40km 정도 떨어진 파타스칼라(pataskala)라는 작은 도시였다. 

    파타스칼라는 인구가 1만2000명에 불과한 전형적인 소도시다. 하루는 시간을 내서 파타스칼라 시내를 걸어서 돌아보았다. 우리의 작은 시골 면(面) 소재지보다 한적한 분위기였다. 한 집 건너 한 집마다 성조기를 내걸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 ▲ 파타스칼라시 중심에 있는 참전 희생용사 기념비. 아무리 작은 도시라도 이처럼 지역 참전용사를 기리는 기념비를 흔히 볼 수 있다.
    ▲ 파타스칼라시 중심에 있는 참전 희생용사 기념비. 아무리 작은 도시라도 이처럼 지역 참전용사를 기리는 기념비를 흔히 볼 수 있다.
    타운 한가운데 눈길을 끄는 기념비가 있어서 가까이 가보았다. 그동안 미국이 치른 모든 전쟁에서 전사(戰死)한 파타스칼라 출신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만든 위령(慰靈)탑이었다. 조형물 주위의 성조기를 비롯해 모든 깃발이 조기(弔旗)로 게양되어 숙연한 분위기를 더했다.

    바닥에는 전사자의 이름이 새겨진 벽돌이 박혀 있었다. 대부분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사람들이고, 6·25전쟁에서 유명을 달리한 분의 이름도 여럿 보였다. 조형물 옆에는 주민들이 쉴 수 있는 정자가 하나 있었고, 정자 앞에는 생화(生花) 꽃다발 2개와 함께 다음과 같이 쓰인 바닥 비석이 놓여 있었다. 

     ‘이 위대한 나라를 위해 용감하게 희생한 파타스칼라의 용감한 남녀에게 이 정자를 바친다.’ 

    필자는 기자 생활을 하면서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많이 돌아다녀 보았지만, 면 소재지나 시 한가운데 자기 고향 출신의 전쟁 희생자를 기리는 어떤 기념비라도 세워놓은 것을 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학교는 학교마다 6·25 때 희생된 학도병 선배들이 있지만, 나라를 지키다 희생된 모교(母校) 선배들을 기리는 기념비를 세워놓은 학교도 거의 없다.
  • ▲ 필자가 방문한 미국 시골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집 모습. 집앞에 국기 게양대가 있고, 집 외벽에는 미국의 상징인 별이 박혀있다.
    ▲ 필자가 방문한 미국 시골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집 모습. 집앞에 국기 게양대가 있고, 집 외벽에는 미국의 상징인 별이 박혀있다.
    집안 곳곳에 성조기

    추수감사절 때 콜럼버스시 외곽 농촌 지역에 있는 평범한 미국의 한 가정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마당의 국기 게양대에는 성조기가 걸려 있었다. 집 바깥벽 처마 아래에는 미국을 상징하는 별 모양의 장식 두 개가 박혀 있었고, 집안 곳곳에도 미국을 상징하는 별과 성조기, 각종 그림이 걸려 있었다.

    화장실 한 곳만 살펴보자면, 작은 성조기가 2개, ‘AMERICA’라는 글자가 새겨진 나무 블록 세트, 국기가 그려진 장난감 트럭과 국기 옷을 입은 테디베어 곰인형, 별이 달린 수건걸이 2개, 별 모양의 꽃꽂이 장식, 성조기가 그려진 목욕 수건과 손수건, 성조기와 독수리가 그려진 전기 스위치, 성조기가 그려진 액자 등이 보였다. 

    집안에 걸린 달력 하나에는 애국심을 강조하는 각종 사진이 실려 있고, 맨 아래 ‘우리가 용감했기 때문에 우리 가정(조국)이 자유를 누린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 ▲ 집안 내부에도 미국을 상징하는 장식물이 곳곳에 걸려있다.
    ▲ 집안 내부에도 미국을 상징하는 장식물이 곳곳에 걸려있다.
    어느 천안함 폭침 생존자의 울분

    필자는 2010년 천안함 폭침(爆沈) 사건을 겪고 막 제대한 한 병사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당시 “우리 군함 폭침의 원인을 두고, 야당 국회의원들이라는 사람들이 김정일을 편드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자기와 전우들이 ‘저런 인간들’을 지키기 위해 희생을 했다고 생각하니 분하다고 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또래들이 재잘거리는 길거리 군중 속으로 힘없이 사라지던 그의 뒷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우리 국민들은 우리가 누리는 평범한 자유가 누군가의 엄청난 희생의 대가라는 것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오늘 밤 당장 집에서 두 발을 뻗을 수 있는 자유는 우리 젊은이들의 귀중한 청춘과 바꾼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번영은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들이 흘린 피와 땀의 산물이다.

    우리는 국가를 위해 희생한 가치의 귀중함을 잘 가르치지 않는다. 반대로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사람을 조롱하는 것을 진보라고 생각하는 ‘변태적이고 자학적인 안보관’에 많은 젊은이들이 노출되어 있다.

    우리가 6·25 때 그렇게 큰 희생을 치르면서 공산주의와 맞서 싸운 것도 결국은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다. 북한 주민들은 70년이 넘도록 죽을 자유마저 박탈당한 채 김씨(金氏) 일가의 완벽한 노예 상태로 살고 있다. 6·25가 자유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기고, 고통 받는 북한 주민들에게도 자유를 가져다주겠다는 결의를 다지는 날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