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어 터지는 초대형 성(性)스캔들에도 잠잠..."여성 아닌 정치 단체 아니냐" 지적도
  • 최근 고은, 이윤택 등 문화계 성추문 논란이 터지고 있음에도 여성단체의 활동이 미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2013년 5월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성추문 사건 의혹 당시 여성단체들이 항의 집회에 나선 모습.ⓒ연합뉴스
    ▲ 최근 고은, 이윤택 등 문화계 성추문 논란이 터지고 있음에도 여성단체의 활동이 미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2013년 5월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성추문 사건 의혹 당시 여성단체들이 항의 집회에 나선 모습.ⓒ연합뉴스

    최근 국내 좌파 문화계의 성(性)추문 논란이 줄을 잇고 있는 가운데 국내 여성단체들이 이를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최영미 시인이 쓴  시(詩) '괴물'의 대상이 고은이라는 사실이 며칠 전 알려지며 문화계 성도덕 논란이 시작됐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의 친구로 잘 알려진 이윤택 연극 연출가가 극단 내 여배우들을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촛불 집회에 참여해 좌파 세력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던 배우 조민기도 자신의 제자를 성추행 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하지만 초대형 성스캔들이 잇따라 터지고 있음에도 여성단체들은 잠잠한 분위기다. 각종 사회 현안, 그 중에서도 여성 인권과 성추문 논란에 즉각 대응을 해왔던 국내 여성단체들이 이번에는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한 발 늦게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21일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성범죄자 이윤택을 처벌하라! 문제는 성차별적 권력구조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이윤택 연출이 저지른 것은 명백한 권력형 성폭력이며 이는 차별적 사회문화, 권위적 조직문화, 여성 혐오적 남성문화에 그 근본 원인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윤택 연출가에 대한 폭로가 시작된 지 약 일주일 만이다. 지난 19일 이윤택 연출가가 사과 기자회견을 가진 지 이틀이 지나서다. 고은이나 조민기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지난달 29일 서지현 검사의 '검찰 조직 내 성추행 폭로'가 있었던 다음날 곧바로 성명을 발표하고 전국 15개 지방검찰청 앞에서 항의 집회를 열어 관련자 처벌을 요구한 것과는 대조되는 부분이다.

    좌파 문화계 성스캔들을 '단순 성대결' 구도로만 몰아가는 성명서 내용도 사실상 애매하다는 지적이 많다. 개인의 성범죄를 사회구조의 문제로 몰아가 본질을 흐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들은 지난 2013년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성추행 논란 당시에는 각종 여성단체들과 연대해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윤창중씨의 소환 조사를 요구했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 책임론'까지 나왔다.

    여성 인사들도 가세해 그를 직접 검찰에 고발했다. 당시 유선희 통진당 여성위원장, 손미희 전국여성연대 상임대표는 윤창중 수사 촉구 기자회견을 마치고 여성 1,000인 공동 고발장을 검찰에 접수하는 적극성을 보였다.

    지난해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자서전 속 '돼지발정제' 논란, 송영무 국방장관의 '미니스커트' 발언 때도 반응은 비슷했다. 한국여성노동자회는 "송영무 장관의 발언은 공인으로서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발언"이라고 격렬히 비판했다. 과거 여성단체들의 활동을 감안하면, 현재의 대응활동은 눈에 띄게 소극적인 셈이다.

    이와 관련해 한 시민사회 관계자는 23일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여성 단체들이 현재 비판 초점을 엉뚱한 데 맞추고 있는데 상당히 의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그들이 이제껏 나섰던 사회 현상을 살펴보면 '여성'이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이념'에 따라 움직이는 당파성을 갖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지난해 안경환, 탁현민 성도덕 논란 사태에도 여성단체들은 별다른 활동이 없었던 반면 본인이 한 행위가 아니라던 홍준표 돼지발정제 논란에는 대규모로 연대해 벌떼같은 공격을 일삼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해당 관계자가 언급한 대로 실제 탁현민, 안경환, 고은, 이윤택, 조민기 등은 문재인 정부와 가까운 성향을 보이는 인사들이다.

    고은 시인은 좌파 성향 문학단체인 한국작가회의 상임고문을 맡고 있고, 이윤택 연출가는 문재인 대통령의 고교 동창으로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지지 찬조 연설을 하기도 한 대표적 친문 인사다. 배우 조민기씨 역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 참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연극 연출가 이윤택씨의 상습 성추행을 수사해달라는 청원이 줄을 잇는 상태다. 또한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에서 '이윤택'을 검색하면 연관검색어로 '여성단체'가 따라나온다.

    네티즌들은 "마지못해 두루뭉술한 성명 한 번으로 땜빵하는 여성단체가 이윤택 못지 않게 가증스럽다", "이 와중에 이윤택 고발한다는 여성단체가 1도 없다는게 실화냐", "홍준표 발정제 갖고 그렇게 떠들던 여성단체들이 이윤택에 대해선 조용하네", "여성단체는 왜 이윤택 처벌하라는 시위 안하나? 문재인 친구라서 그런건가"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쏟아진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공동대표는 21일 "이게 바로 문 대통령이 말하는 적폐인데 대통령은 여기에 대해 한 마디도 안 한다"며 "걷잡을 수 없이 퍼지는데도 소위 진보정당 사람들, 청와대, 여성단체들은 입을 다물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은 "현 정부 출범 이후 (이윤택이) 청와대에 출입한 자료를 달라고 했더니 줄 수 없다고 한다"며 "대통령이 성추행범과 같은 자리에 있었다는 것은 상상이 안 된다"고 했다.

    반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좌파 문화예술계 성추문 논란과 관련해 별도의 언급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