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에 올라왔지만, 일주일만에 다시 유성으로 내려가야 했다. 수리가 끝난 내 차를 찾아오기 위해서였다.

    견적이 이 백 만원 가까이 나왔다. 성규가 수리비를 자신이 대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사양했지만, 끝끝내 사양하지는 못했다. 돈에는, 아무래도, 직업상 약해질 수 밖에 없는 나였다.

    내 차가 수리에 들어간 동안, 우리는 차없이 다녔다. 사실 '다녔다'고 하기도 뭣했다. 성규의 도망간 아내의 흔적조차 실마리를 찾지 못했고, 도무지 어디에 가서 그녀를 찾아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유성을 다녀온 이후 우리는 거의 성규의 도망간 아내를 찾는 일에 손을 놓고 있다고 할 만한 상태였다.

    유성에서의 실망이 컸던 탓도 있었다. 공신력 있는 경찰의 목격도 있었고 해서, 큰 기대를 걸고 내려갔는데, 막상 그 결과가 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목격자인 최득구 순경을 탓한 것은 아니었다. 최득구 순경은 선의였고, 친구의 일이어서 신경써 준 일이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었다. 우리의 기대가 어긋난 것은 '바다풍경' 맛사지 센터의 맛사지걸이 성규의 도망간 몽골 아내와 너무 흡사하게 생긴 탓이었지, 누군가의 악의 때문은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성규의 도망간 아내를 찾는 일에 거의 손을 놓고 있었으므로 사실 지난 일주일 동안 차가 크게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차란 없으면 또 불편해지는 것이었으므로, 개점휴업 상태라 하더라도 차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거의 어쩔 수 없이 드는 것이었다.

    지만이의 새 차는 아직도 안 나오고 있었다. 주문한 게 언젠데. 아직도 안 나오고 있다는 게 좀 이상했다. 지만이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문득 스쳐지나가곤 했다. 지만이는 내색은 안 하지만 사업이 잘 안 되는 것 같았다. 지 말로는 수입이 짭짤하다고는 하지만, 지만이와 요 몇 달 같이 생활하면서 느낀 건데, 결코 그렇지 않은 듯 했다. 새 차를 주문할 필요가 있긴 하지만, 재정상의 문제 때문에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주문한 새 차가 여적지 안 나올 리가 없잖은가. 물론 지만이를 의심하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지만이의 새 차가 아무리 기다려도 나올 기미가 안 보인다는 것은 몹시 신경질나는 일이기도 했다.

    유성에는 나 혼자 내려갔다왔다. 내 차를 가질러 가는데 지만이 성규 모두 갈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성규는 짐짓 미안한 듯 굳이 따라나서려 했지만, 내가 말렸다.

    유성에 내려가 수리한 차를 찾아 서울로 올라오는데 낮시간의 거의 대부분을 할애해야 했다. 평일이었는데도 고속도로 사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올라올 때에는 사고마저 있었다. 그 바람에 고속도로에서 한 삼 사십 분은 거북이처럼 기듯이 달려야 했다. 서울에 도착했을 때의 나의 기분은 좀 짜증스럽다는 것이었다.

    짜증스러운 기분으로 올라왔지만, 나를 맞는 서울의 분위기는 다소 바뀌어 있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찾아나가야 할지 통로가 꽉 막혀 침체된 분위기였었는데, 돌아와보니까 지만이와 성규가 상당히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인가가 발생한 듯 했다.

    지만이와 성규가 갑자기 분주해진 까닭은, 곧 내게 밝혀졌다. 몽골 커뮤니티였다. 우리는 얼마전 몽골 커뮤니티에 오르그뜨라는 몽골 여자를 찾는다는 광고 비슷한 메시지를 띄웠었는데, 그 몽골 커뮤니티의 운영자가 우리에게 메모로 연락을 해왔던 것이었다.

    메일의 내용은 이랬다.

    오르그뜨를 찾는다고요.
    왜 찾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만나 뵙고 싶군요.
    이번주 금요일 오후 일곱 시쯤이 어떨까 싶은데요.
    장소는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의 야외공연장으로 하고요.
    때와 장소가 맞춤하시면 연락 주십시오.
    -몽골 커뮤니티 운영자 케이사모-

    P.S. : 때와 장소가 맞춤하지 않으면, 바꾸셔도 괜찮습니다. 다만 주말 만큼은 피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주말에는 좀 사교가 바쁘기 때문에, 말이지요.

    반가운 메일이었다. 아니, 반가운 메일 이상이었다.

    꼭 기다리던 메일이었다.

    한 줄기 서광이었다. 십 년 가뭄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꿀맛같은 단비가 내린 기분이었다.

    우리는 몽골 커뮤니티의 운영자에게 답신 메일을 보냈다.

    아니, 우리가 아니라 나는 빠지고 지만이와 성규가 그렇게 했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 모든 상황은 이미 상황 종료된 리바이벌이었으니까.

    때와 장소는 아주 맞춤하고, 아무 문제가 없고, 변경할 여지가 없고, 당연히 이번주 금요일 오후 일곱 시에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의 야외공연장에 나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 이번주 금요일 오후 일곱 시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의 야외공연장에서 뵙기로 하자고, 메일을 보냈다.

    우리는 금요일이 되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달리 딱히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금요일이 되어서는 또 오후 일곱 시가 되기를 고대했다. 이 역시 금요일이 되었다고 해서 특별히 달리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후 여섯 시 조금 안 되어서 고시원을 출발했다. 정릉에서 대학로까지 이 십여 분이면 충분한 거리였지만, 여러 가지 사정을 감안해 일찍 출발했다. 여러 가지 사정 중에서 가장 큰 사정은 무엇보다도 몽골 커뮤니티의 운영자 케이사모를 빨리 만나보고 싶다는 그 심정이었다. 일찌감치 출발한다고 빨리 만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마음의 행로란 합리적으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가면서 몽골 커뮤니티의 운영자 케이사모가 우리가 오르그뜨를 찾는 이유를 분명 물어올 텐데 어떻게 대답할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숙의했다. 우리는 그 문제에 대해 케이사모의 메시지를 받은 이후부터 지금까지 내내 고민해왔었다. 사실대로 말하는 게 좋을지 아니면 다른 이유를 둘러대는 게 좋을지 갈등이 있었다.

    나는 우리가 오르그뜨를 찾는 이유를 사실대로 밝혀야 한다는 주의였다. 그러나 지만이는 나와 주장이 달랐다. 사실대로 말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내어 케이사모란 사람이 오르그뜨의 행방을 묻어둘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사실대로 말하면 안 되고 적당히 둘러대어야 한다고 했다. 도대체 사실대로 안 밝히고 어떻게 적당히 둘러댈 거냐고 내가 다그치자, 잠시 망설이다 이렇게 대답했다. 자기 회사 직원으로 일했는데, 공금을 횡령해서 도망친 것쯤으로 해 두면 되잖겠느냐고 했다. 공금의 금액은 뭐, 오 백 만원쯤이 적당하겠다고 했다.

    성규는 어느 쪽에 대해서나 망설였다. 나와 지만이의 의견이 합치되면, 그 의견을 따르겠다고 했다. 나는 사람이란 솔직한 게 좋고, 솔직히 털어놓아야 후환이 없는 거라고 주장했지만, 결국 나의 주장은 지만이에게 씨가 먹히지 않은 대신 지만이의 주장은 나에게 씨가 먹혔다. 내가 지만이에게 설득당했다는 것이었다.

    일을 성사시키는 데 있어 처음부터 우리 패를 다 드러내 보여주는 것은 분명 잘하는 짓이라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솔직한 게 후환이 없을 일이긴 하지만, 일을 성사시킨다면 어느 정도의 술수는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 성규의 도망간 몽골 아내를 찾는 일이라고 해서 예외일 리가 없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나의 주장보다는 확실히 지만이의 주장이 일리있는 것이었다. 성규의 주장에 나의 주장을 굴복시키는 것은 뼈아픈 경험이었지만, 성규의 도망간 몽골 아내를 찾는다는 대국적인 견지에서 나는, 나의 주장을 철회했다.
     

    우리는 여섯 시 십 분쯤에 마로니에 공원에 도착했고, 몽골 커뮤니티의 운영자 케이사모는 일곱 시 정각에 나타났다. 기다리는 오 십여 분 동안 우리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차 안에서 지냈다. 이번에는 진짜 성규의 도망간 몽골 아내를 찾게 될 수 있을까 의견을 나눠 보았지만, 우리 셋 중 장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 기대가 높아진 것만큼은 분명했다. 특히 성규의 경우에는.

    기다리는 게 좀 지루하였으므로 그동안 저녁을 먹을까도 싶었지만, 그 의견은 곧 묵살되었다. 몽골 커뮤니티의 운영자 케이사모가 나오면 그 자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 게 더 나으리란 생각에서였다. 케이사모가 저녁식사를 하고 나올 수도 있었지만, 우리처럼 급히 나오느라 안 하고 나올 수도 있었다. 아마도 저녁식사를 안 하고 나올 확률이 더 높았다. 아쉬운 건 우리쪽이었고, 아쉬운 우리가 대접하는 게 예의였다.

    대접해야 할 우리가 케이사모가 저녁식사를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추썩 우리만 저녁을 해결하는 것은, 아쉬운 자가 취할 바 태도가 아니었다. 케이사모도 뭘 좀 아는 인간이고 대접을 받을 작정이라면, 저녁식사는 안 하고 나올 게 틀림없다고 보는 게 합당했다.

    해가 좀 길어졌다고는 해도 이월 말의 겨울저녁은 여전히 어두웠다. 몽골 커뮤니티의 운영자 케이사모를 찾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이월 말의 저녁 일곱 시는 여전히 사방이 어두운 밤이었고, 몽골 사람이라고 해서 한국인과 별 차이가 없는 생김새였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케이사모를 찾은 것이 아니라 케이사모가 우리를 찾아냈다. 여섯 시 오 십 오 분에 우리는 내 차를 나와 마로니에 공원의 야외공연장으로 갔는데, 케이사모가 그렇게 그를 기다리고 있는 우리에게로 와 혹시 오르그뜨를 찾아온 사람이 아니냐고 물어왔던 것이었다. 그 때의 시각이 만나기로 한 정각 일곱 시였다.

    "케이사모씨, 나오느라 수고했고요. 저녁식사 안 했지요."
    "예, 아직 안 했어요."
    "그럼, 일단 어디 들어가서 저녁식사부터 하기로 하지요."

    케이사모에게 물을 말이 많았다. 오르그뜨가 어디 있느냐. 지금 만날 수 있느냐. 당신이 말하는 오르그뜨가 우리가 찾는 그 오르그뜨냐. 오르그뜨가 왜 멀쩡한 남편을 버리고 도망간 거냐. 딴 남자가 있는 거냐. 몽골에서부터 이런 작정을 하고 한국에 온 거냐. 처음부터 위장결혼이었던 거냐…

    케이사모를 만났을 때부터 아니, 케이사모에게서부터 이메일을 받았을 때부터 우리의 마음 속에서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던 의문들이었었다. 케이사모를 보는 순간 당장 그 의문들을 풀고 싶었었다. 그리고는 오르그뜨가 있는 곳으로 지금 당장 달려가고 싶었었다.

    그러나 이월의 추운 겨울밤 이런 한 데에서 그런 질문들을 봇물처럼 쏟아내놇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월의 추운 겨울밤 이런 한 데에서 봇물처럼 쏟아지는 질문들을 받고 케이사모가 정상적인 답변을 해 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마음이 바빠도,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었고 질러가는 것은 정도가 아니었다.

    찻길을 건너 마로니에 공원 건너편에서 혜화동 방면으로 좀 내려와 왼쪽으로 꺾어진 골목으로 접어들자 감자탕 집 간판이 눈에 띄었다. 그 간판을 보고 내가 감자탕을 먹어본 적이 있느냐고 케이사모에게 묻자, 케이사모는 먹어본 적이 있을 뿐만아니라 아주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살펴볼 것 없이 감자탕 집 안으로 들어갔다.

    감자탕 4인분짜리에 공기밥 네 개, 그리고 반주로 소주를 첨가했다. 내가 또 반주로 소주 괜찮느냐고 묻자 케이사모가 소주 괜찮을 뿐만아니라 아주 즐긴다고 답변했다. 케이사모가 소주를 아주 즐긴다고 하는 바람에 소주 한 병만 시켰다가 두 병을 덧붙여 모두 세 병을 시켰다.

    어두운 곳에서도 대강 확인은 하고 있었지만, 밝은 음식점에 들어와서 보니 몽골 커뮤니티의 운영자 케이사모는 정말이지 대단한 거구였다. 키가 우리들 중 가장 큰 지만이보다도 머리 하나가 컸고, 몸은 우리들의 두 세 배는 될 듯 싶었다. 그렇다고 살이 쪘다는 것이 아니고, 선천적으로 기골이 장대한 데다 운동으로 단련된 탓에 그리 된 다부진 몸매였다. 척 보아도 상당히 고강도의 운동을 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는 체구였다. 케이사모의 장대한 모습을 확인하면서 우리들 중 나는 이런 상상을 하기까지 하고 있었다.

    몽골 사람들은 칭기즈칸의 후예라고 하던데, 칭기즈칸의 살아 생전 모습이 지금 내 눈 앞에 이 사람의 모습과 엇비슷하지 않았을까. 그만큼 케이사모의 체구의 장대함도 장대함이지만, 좌중을 압박하는 위압감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실제 케이사모는 과거에 고강도의 운동을 한 사람이었다. 지만이가 지나가는 말 비슷이 운동을 하셨었나 보지요, 몸이 참 좋으신데요 하고 묻자 케이사모가 몽골에서 '부흐'선수였다고 대번에 대답했다. '부흐'는 몽골의 씨름이었다. 우리나라의 씨름만큼이나 인기가 있고 아니 그보다 더욱 인기가 있고, 몽골의 국기에 해당되는 운동이었다.

    감자탕이 나오고 소주 한 두잔 반주로 하였을 때, 우리들 중 성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지금 오르그뜨가 어디에 있느냐 고. 성규의 물음은 다소 성급했다고 할 수 있었다. 지금 오르그뜨가 어디 있는지 하는 건 차후의 문제였다. 가장 시급한 건 우리가 찾는 오르그뜨와 케이사모가 알고 있다는 오르그뜨가 동일 인물인지 하는 확인절차였다.

    성규의 성급한 질문에 케이사모가 대답을 회피하고, 이렇게 되물어왔다.

    "그 전에요, 내가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왜 오르그뜨를 찾으려 하는 거지요."

    케이사모의 질문은 충분히 예견된 바의 것이었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으로 오는 동안 내내 내 차 안에서 우리가 숙의한 게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었다. 나는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얘길 하자 했고, 지만이는 그래서는 곤란하고 둘러대자 했고, 성규는 나와 지만이의 의견이 일치하면 그를 따르겠다고 했다. 나는 지만이를 설득하는데 실패했었다. 대신 지만이는 나를 설득하는데 성공했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오르그뜨를 찾는 이유에 대해 있는 그대로를 얘기하지 않고 둘러대기로 하였던 것이었다.

    오르그뜨는 지만이가 운영하는 아이티 업체의 직원이었고, 헌데, 그녀가 회사 공금을 횡령해 도망갔고, 그래서 부득이하게 그녀를 찾는 중이라고, 결코 그녀를 벌주기 위해서가 아니고 우리는 횡령해 간 공금만 돌려받으면 다른 일체의 문제에 대해서는 함구할 작정이라고. 그렇지 못할 경우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오르그뜨를 범법자로 고발할 수 밖에 없노라고.

    물론 이 장황한 둘러대기는 지만이의 머릿 속에서 나왔고, 지만이가 했다.

    "그러시군요. 오르그뜨가 사장님 회사 돈을 빼돌려서 찾고 계신 거군요."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건 횡령한 돈 뿐입니다. 이자도 바라지 않습니다. 원금만 돌려주면 그걸로 모든 게 만사 오케이입니다."
    "알겠습니다. 헌데, 오르그뜨가 회삿돈을 횡령했다는 게 잘 믿기지 않습니다. 오르그뜨가 그랬다는 게.....워낙에 착하고 뭘 모르는 여자라서."
    "사람이 무언가에 쫓기고 절박하다 보면 공금을 횡령할 수 있지요. 아무리 착하고 뭘 모르는 여자라 하더라도 말이지요. 아니, 착하고 너무 뭘 모르는 여자이기 때문에 그런 유혹에 더 잘 넘어갈 수도 있는 겁니다.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는 속담이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얌전한 고양이가 어디에 먼저 올라간다고요?"
    "부뚜막, 속담이 그렇다는 겁니다."
    "예, 속담이요…"
    "그리고 오르그뜨란 여자는 케이사모씨가 보듯 그렇게 착하고 뭘 모르는 여자가 결코 아닙니다. 몽골에서는 어땠을지 몰라도 적어도 한국에 온 오르그뜨는 그렇습니다. 내 겪어본 경험에서 볼 때는 분명히 그렇습니다."

    지만이는 자기가 오르그뜨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얘기했다. 지만이의 얘기는 옆에서 듣기에 사실 좀 거북했다. 내가 그랬으니, 성규는 더욱 그와같았을 거였다.

    지만이의 얘기를 듣는 케이사모는 별로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았다. 낯빛이 어두워졌고, 연거푸 소주 두 잔을 마셔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기분이 안 좋아졌다기 보다, 몹시 실망하는 눈치였다. 오르그뜨가 참하지 않고 뭘 모르지도 않는다는 그 말이 그를 그렇게 실망시키는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오르그뜨가 회사돈을 떼어먹고 도망갔다는 그 말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고.

    "오르그뜨에게 여러분이 찾는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잘 한 겁니다. 그랬으면 또 달아났을지 모르는 일 아닙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여간, 그래서 여러분이 찾는 이유도 오르그뜨에게 물어보질 못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나온 건데, 갑자기 오르그뜨가 사장님 회삿돈을 횡령해서 도망쳤다고 하니, 몹시 놀랍고 당황스러운 게 사실입니다."
    "케이사모씨가 놀라고 당황할 일이 아니지요. 일을 저지른 건 오르그뜨인데, 왜 케이사모씨가 놀라고 당황한단 말입니까."
    "그야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오르그뜨가 그랬다는 게...."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사이 감자탕이 펄펄 끓었고, 우리는 식사를 했고, 소주 한 잔을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