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식점 같은 데서 일하는 것보다 맛사지 센터에서 일하는 게 더 돈을 많이 버나 보지."
    "그건 모르겠어요. 음식점 같은 데서 일해 본 적이 없으니까요. 저는 늘 맛사지 센터에서만 일을 해 왔어요. 사회에 첫 발을 들여놓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하얼빈에서도 맛사지 센터에서 일했단 말이야."
    "네. 하얼빈에서도 전 맛사지걸이었어요. 한국에 나올 땐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단 생각도 있었지만, 배운 게 칼질이라고 이것 밖엔 달리 할 게 없었어요. 제 경쟁력이라곤 맛사지 뿐이었으니까요."
    "맛사지는 훌륭한 경쟁력이지. 일종의 전문직이니까."

    빈 말이 아니었다. 아니, 빈 말이었다. 한국 사람들 중에 맛사지를 훌륭한 경쟁력이 있는 전문직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맛사지걸도 알 일이었다.

    이쯤해서 나는 맛사지걸에게 내 불만을 토로해보고 싶었다. 맛사지걸에 대한 불만은 아니고, 조선족에 대한 불만이었다. 맛사지걸이 기분이 상할지 모르겠지만, 조선족 아가씨를 만난 이상 나로써는 그냥 지나갈 수 없다는 마음가짐이었다.

    오 년여 동안이나 그 문제를 갖고 씨름해 온 나로써는, 비록 소설을 쓰는 데는 실패했다 하더라도, 그랬다.

    "아가씨는 이름이 뭐지."
    "소영입니더. 김소영."
    "진짜 이름인가?" "여기서만 통하는 이름입니다. 진짜 이름은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진짜 이름은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말이 새삼스러웠다. 맛사지걸의 진짜 이름이 궁금하지 않았던 거지만, 그 소리를 듣고 나니까 갑자기 알고 싶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굳이 알려고들지는 않았다.

    "헌데, 내가 소영이한테 특별히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뭘 말입니까."
    "왜 조선족들은 탈북자들을 못살게 구느냐 하는 거지."
    "탈북자들을 못살게 군다니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탈북자들이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 많이 나와 있다는 걸 소영이도 알고 있지."
    "네. 알고 있습니다. 제 살던 하얼빈에도 적잖은 탈북자들이 나와 있었습니다."
    "그래, 맞아. 근데, 내가 듣기로는 그렇게 중국에 나와있는 탈북자들을 조선족들이 못살게 굴고, 못되게 대한다는 거야."
    "도대체 누가 뭘 못되게 군다는 겁니까."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라는 거야. 곤경에 처한 탈북자들을 외면한다든가, 오히려 탈북자들을 곤경에 빠뜨리기까지도 한다는 거지. 탈북자들을 돈을 받고 중국놈이나 다른 여타 사람들에게 팔아넘긴다든가, 중국 공안에게 찔러 탈북자들을 북한으로 압송되어가게 한다든가 하는 식이지."
    "모든 조선족이 다 그런 건 아닙니다. 일부 극소수의 조선족들만이 그럴 뿐이지요."
    "그야 그렇지. 하지만 그 일부의 조선족들이 조선족 전체의 이미지를 얼마나 나쁘게 하는지 알아?"
    "모르갔시요. 그런 건. 생각하기도 싫구요. 살다보면 세상에 무슨 일은 안 생기겠나요. 저의 경우에는 조선족에 대한 좋은 기억 밖에는 없시오."
    "그야 소영이가 조선족이니까 조선족에 대한 좋은 기억 밖에 없는 거겠지. 하지만 탈북자들의 입장은 그렇지 않거든. 조선족에 대한 탈북자들의 기억은 몹시 안 좋다는 게 일반적이야."

    맛사지걸의 얘기가 좀 이상했다. 하여간 고맙다고 하는데, 뭘 고맙다고 하는 건지 모르겠어서였다. 맛사지걸은 집단 소속감이 좀 빈약한 여자인 듯 했다. 자기가 속한 집단이 욕을 먹는데도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하고, 오히려 고맙다고 하는 걸 보면. 조선족에 대해 좋은 기억 밖에 없다고 하면서도 조선족을 욕하는 소리에 오히려 고맙다고 반응하는 맛사지걸은, 실은 조금은 당혹스러웠다.

    맛사지걸이 팬티를 내려달라고 청해왔다. 나는 거절했다. 거기까지 맛사지를 받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이걸 써먹은 지가 하도 오래 돼서, 조금만 자극을 받아도 견디지 못할 거란 생각에서였다. 견디지 못하겠으면 맛사지걸과 그 짓을 하고 돈을 더 주면 되는 일이겠지만, 웬지 맛사지걸과 그 짓을 하고 싶지가 않았다.

    솔직히 맛사지걸은 나의 취향이 아니었다. 나는 달덩이처럼 둥글둥글한 얼굴을 가진 여자한테는 결코 성욕이 일질 않았다. 일종의 열등의식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서구적이기 보다는 지나치게 한국적이라는. 맛사지를 끝내고 나가려는 마당에 맛사지걸이 조심스런 목소리로 그랬다.

    "감사합니다. 좋은 얘기를 해주셔서...."
    "?...."
    "사실 저는 하얼빈에서 왔지만, 탈북잡니더. 1997년에 북한을 탈출했시오. 한국에는 이 년 전에 들어왔습니더."

    나도 맛사지걸에게 말할 게 있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물을 게 있었다.

    방을 나서기 전에 나는 맛사지걸에게 도망간 성규의 몽골 아내 사진을 보여주고 여기에 이런 여자가 있는지 없는지 최종적으로 확답을 받을 참이었다. 여기에 몽골 여자는 없다고 하니까 있을 가능성은 희박한 거지만, 또 모르는 일이었다. 의외의 여분이 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도망간 성규의 몽골 아내가 몽골인임을 숨기고 한국인 행세를 했을 수도 있는 일이니까.

    맛사지걸이 탈북자임을 숨기고 조선족 행세를 한 것처럼 말이다. 말로만 확인할 때랑 눈으로 보면서 확인할 때랑은 다르고, 꼭 일치한다고만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맛사지걸이 조선족이 아니고 탈북자라는 소리를 듣는 순간 머릿속이 텅 비어버리고 허전해진 까닭이었다. 내가 왜 여기에 와 있는지조차 까맣게 잊었을 정도로.

    방 밖으로 나와 출입구로 가자 지만이가 이미 나와 있었다. 성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성규는 아직 마사지를 받고 있는 중인 듯 했다.

    그러나 나의 성급한 생각이었다. 우리 중에서 제일 먼저 마사지 방에서 나온 것은 성규였다. 성규는 들어온 맛사지걸이 몽골 여자가 아니고, 이 업소에 몽골 맛사지걸은 없다는 마사지걸의 말을 듣고는 당황해 맛사지방을 박차고 나와 업소의 젊은 마담을 찾았던 것이었다. 왜 몽골 마사지걸을 들여보내 준다고 해 놓고서는 엉뚱한 한국 맛사지걸을 들여보냈느냐고 따지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따져봐야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 업소에는 몽골 맛사지걸은 애초부터 없었던 거니까.

    젊은 마담이 사과를 했지만, 성규의 의구심을 가라앉힐 수는 없었다. 성규가 자신의 품 안에서 도망간 몽골 아내의 사진을 꺼내어 젊은 마담에게 보여주었고, 이 사진 속 여자가 여기에 있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다. 젊은 마담은 사진 속 여자가 업소에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 주는 대신, 먼저 사진 속 여자가 누구냐고 성규에게 되물었다. 성규는 자신의 아내라고 솔직하게 대답했고, 몽골 여자라는 것도 밝혔다.

    젊은 마담이 다소 안도한 듯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진 속 성규의 아내와 똑 닮은 여자가 자기 업소에 있긴 하지만, 그 애는 몽골 여자가 아니고 업소에서 일한 지도 이 년이 넘는다고 했다. 그러니까 사진 속 성규의 아내와 자기네 업소에서 일하는 그 애가 쌍둥이처럼 똑 닮긴 했지만, 그 애가 성규가 찾는 성규의 몽골 아내는 아니라고 했다.

    성규는 젊은 마담의 말을 믿지 않았다. 의심했다. 자기 아내와 똑 닮았다는 그 말에만 정신이 없었다. 자기 아내와 쌍둥이처럼 닮았다는 그 맛사지걸을  꼭 봐야겠다고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성규로써는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을 일이었다. 내가 성규였더라도 그렇게 고집을 부렸을 터였다.

    성규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걸 안 젊은 마담이, 성규에게 그 맛사지걸을 보여주기로 수락했다. 그러나 한마디를 잊지 않았다.

    "보면 알겠지만, 그 애는 몽골 여자가 아녜요. 한국인이라고요. 이름도 수정이인 걸요. 이수정."

    이 말을 하고는 젊은 마담이 성규를 데리고 맛사지걸들이 대기하고 있는 대기실로 갔고, 내가 맛사지를 끝내고 나온 게 마침 성규가 젊은 마담과 함께 대기실로 간 순간이었다. 그래서 지만이의 모습은 보이는데, 성규의 모습은 나의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었다.

    성규는 곧 모습을 드러내었다. 축 쳐진 어깨에 어두운 얼굴이 한 눈에 보아도 깊이 실패한 사람의 몰골이었다. 찾는 걸 못 찾았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성규가 찾는 건 물론 그의 도망간 몽골 아내였다.

    성규의 뒤를 업소의 젊은 마담이 쫓고 있었다. 젊은 마담은 상당한 미인이었는데, 칼을 많이 댄 듯한 얼굴이었다. 젊은 마담이 성규를 동정하는 눈치였다. 업소를 나서는 우리에게 던지는 그녀의 작별 멘트가, 특히 성규를 향한 작별 멘트가, 따뜻했다.

    "안녕히 가세요. 유성에 올 일이 있으면 또 들러주세요."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인 후에 멀리서 들려오는 메아리처럼 젊은 마담의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아내를 꼭 찾기를 바라겠어요."
    "....."

    밖은 어느새 해가 지고 어둔 밤이었다. 짧은 겨울해였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더 짧은 것 같았다.

    우리는 얼마간을 아무 말 없이 어둠 속을 걸어갔다. 골목이 끝나고 대로변과 만나는 지점에서 불켜진 아드리아네 호텔의 간판이 하늘에 떠있는 비행선처럼 우리 눈 앞에 들어왔다.

    모든 게 헛된 꿈이었다. 유성에 우리가 찾는 것은 없었다. 청양에도 없었다. 물론 서울에도 없었다. 있는 것은 우리들의 바램 뿐이었다. 우리들의 바램을 쫓아 허둥지둥 달려온 하루가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하루의 끝에서 우리가 만난 것은 아무도 기대하지 않은 네온싸인 불빛에 갇힌 유성의 밤거리였다.

    "정말이지 너무 똑같았어. 생김새만 보고서는 진짜 오르그뜨인 줄 알았어. 나도 모르게 여자를 보고 오르그뜨라고 소리쳤지. 여자는 내가 자기를 오르그뜨라고 부르는 게 당황스러웠던 모양이야. 날더러 누구냐고 물어오는 거야. 그것도 아주 똑똑한 한국식 발음으로 말이야. 여자가 입을 열었을 때에야 알았지. 이 여자는 오르그뜨가 아니라는 걸. 여자는 몽골 사람이 아니었으니까."